보령 읍성(保寧邑城) 보령성지(保寧城址)’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보령중학교 안에 있는 해산루(海山樓)로부터 좌우로 이어진 성벽이다. 보령읍성의 정문인 남문dms 주포초등학교와 보령중학교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종 13년(1431)에 현감 박효성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성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성되었으며 그 이후 고려 말엽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가 커지자 보령읍성을 지키기 위하여 그 외곽으로 고남산성(古南山城)을 수축하였고, 바닷가에 아현산성(我峴山城)을 쌓아 대비하였다. 그러나 왜구들이 서천포·남포 방면으로 침입해오자 보령읍성도 적의 손에 들어가 왜구에 의해 성이 크게 파괴되었다. 왜구의 침략이 10여 년이나 계속되자 자연히 성은 허물어지고 고을은 폐허화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오천(鰲川)에 수군절도사영을 두어 바다로 침범해오는 왜구를 막음으로써 보령성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오늘날 알려져 있는 보령읍성은 세종 20 년 (1430) 에 쌓아서 치소의 기능을 하였던 곳이다. 분류:보령의 산성 분류:보산성 분류:영산성 분류:읍성
보령 읍성(保寧邑城) 보령성지(保寧城址)’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보령중학교 안에 있는 해산루(海山樓)로부터 좌우로 이어진 성벽이다. 보령읍성의 정문인 남문dms 주포초등학교와 보령중학교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종 13년(1431)에 현감 박효성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성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성되었으며 그 이후 고려 말엽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가 커지자 보령읍성을 지키기 위하여 그 외곽으로 고남산성(古南山城)을 수축하였고, 바닷가에 아현산성(我峴山城)을 쌓아 대비하였다. 그러나 왜구들이 서천포·남포 방면으로 침입해오자 보령읍성도 적의 손에 들어가 왜구에 의해 성이 크게 파괴되었다. 왜구의 침략이 10여 년이나 계속되자 자연히 성은 허물어지고 고을은 폐허화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오천(鰲川)에 수군절도사영을 두어 바다로 침범해오는 왜구를 막음으로써 보령성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처럼 보령읍성은 왜적을 막기 위해 고려 때 축성된 것으로 다른 읍성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오늘날 볼 수 있는 석성으로 개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의 둘레는 633m, 높이는 3.6m이고, 성 안에 우물이 둘 있고 못이 하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성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보령의 고을이 대천으로 옮기면서부터 더욱 퇴락하여 지금은 여기저기 성벽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기단의 성 돌은 길이가 1m나 되는 큰 돌로 되어 있다.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오늘날 알려져 있는 보령읍성은 세종 20 년 (1430) 에 쌓아서 치소의 기능을 하였던 곳이다. 분류:보령의 산성 분류:보산성 분류:영산성 분류: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