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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현성(古縣城)는 시도기념물 제46호(경남)는 거제의 읍성으로, 경상남도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의 대지 위에 평면의 배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현종 4년(1663)까지 거제군의 관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둘레가 3,038척(921m), 높이 13척(4m)이라 하였으나,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성벽의 길이는 818m, 높이는 2m이다. 동·서·남의 3곳에 성문을 내었으며, 성문 앞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은 성 하나씩을 쌓았다. 또한 성문 위에 낮은 담을 설치하고, 성 둘레에 못을 파서 물이 흐르도록 하는 등의 방어시설들을 마련해 놓았다. 이 성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 때 왜군에 함락되기도 하였으나, 남해안 수군의 진영에 이웃한 요새지로 쓰였다. 그 후 관아를 거제읍으로 이전하면서 읍성의 기능을 잃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UN군에 의해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는 서남쪽 600m 정도만이 옛모습의 성벽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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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고현성(古縣城)는 시도기념물 제46호(경남)는 거제의 읍성으로, 경상남도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의 대지 위에 평면의 배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현종 4년(1663)까지 거제군의 관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둘레가 3,038척(921m), 높이 13척(4m)이라 하였으나,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성벽의 길이는 818m, 높이는 2m이다. 동·서·남의 3곳에 성문을 내었으며, 성문 앞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은 성 하나씩을 쌓았다. 또한 성문 위에 낮은 담을 설치하고, 성 둘레에 못을 파서 물이 흐르도록 하는 등의 방어시설들을 마련해 놓았다. 이 성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 때 왜군에 함락되기도 하였으나, 남해안 수군의 진영에 이웃한 요새지로 쓰였다. 그 후 관아를 거제읍으로 이전하면서 읍성의 기능을 잃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UN군에 의해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는 서남쪽 600m 정도만이 옛모습의 성벽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성은 조선(朝鮮) 세종(世宗) 5년(1423) 당시 관아(官衙)가 있던 사등성(沙等城)이 좁고 물이 모자라 지키기 어려워 세로이 읍성터를 찾아 경상도민(慶尙道民) 20,000여 명을 동원, 9년간에 걸쳐 쌓은 성이다. 둘레가 2,000m 높이 7m나 되는 이 성은 동·서·남의 세 방향에 성문(城門)이 있었고, 성 둘레에는 해자(垓字)를 두른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의 대표적인 축성방식(築城方式)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평지읍성(平地邑城)이다. 세종 14년(1432) 성안에 40여칸의 건물을 지어 사등성에 있던 관아를 이곳으로 옮겨 읍성을 삼고, 적의 침입 때 인근의 주민이 들어와 지키도록 하였던 곳이다. 선조(宣祖) 25년(1592) 5월 일본군(日本軍)에 의해 함락된 때도 있었으나 남해안의 수군(水軍)의 진영에 이웃한 요새지(要塞地)였다. 현종(顯宗) 4년(1663) 관아를 지금의 거제읍(巨濟邑)으로 이건함에 따라 읍성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6·25사변 전만 해도 원형(原形)에 가까운 옛 성벽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U.N.군에 의해 포로수용소가 설치될 때 성의 일부를 헐었으므로 현재는 서남쪽 부분 600m 정도만 옛모습의 성벽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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