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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자 산성은 오이도의 산성이다. 군자산(199m)은 높지 않다. 하지만 바다와 이어진 평지에 솟아 있어 조망권이 압도적이다. 해안과 내륙을 한눈에 지켜보는 지형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이곳에 산성이 존재했다. 성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기와 조각과 회청색 토기조각, 백제토기류 등이다. 성벽은 산 정상을 흙과 돌을 혼합해 쌓은 테뫼식이며, 전체둘레는 약 400m 정도다. 등산객들 출입구로 이용되는 남쪽에 길이 10m, 높이 3m 정도의 성벽이 무너진 채 석축이 너덜너덜하다. 문지로 보이는 이곳의 폭은 2,5m 정도다. 북쪽에는 성벽이 굽어지면서 양쪽을 쌓아 올렸는데, 성 안쪽에 8m 정도의 움푹 파인 저수시설이 남아있다. 나머지 구간은 성벽의 윤각만 흐릿하게 남아있다. 정상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너른 평지가 있고, 천년 묵은 느티나무 한 그루와 켜켜이 쌓인 돌무더기가 산성에 스민 역사를 전해준다. 군자산성의 초기축성은 어느 세력이 쌓았는지 수수께끼다. 축조형태를 보면 허술하다. 흙과 돌을 비벼가며 쌓았는데, 고대산성에서 이런 작은 규모의 산성은 백제시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군자산성은 삼국시대부터 남양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로를 지키는 요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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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자 산성은 오이도의 산성이다. 군자산(199m)은 높지 않다. 하지만 바다와 이어진 평지에 솟아 있어 조망권이 압도적이다. 해안과 내륙을 한눈에 지켜보는 지형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이곳에 산성이 존재했다. 성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기와 조각과 회청색 토기조각, 백제토기류 등이다. 성벽은 산 정상을 흙과 돌을 혼합해 쌓은 테뫼식이며, 전체둘레는 약 400m 정도다. 등산객들 출입구로 이용되는 남쪽에 길이 10m, 높이 3m 정도의 성벽이 무너진 채 석축이 너덜너덜하다. 문지로 보이는 이곳의 폭은 2,5m 정도다. 북쪽에는 성벽이 굽어지면서 양쪽을 쌓아 올렸는데, 성 안쪽에 8m 정도의 움푹 파인 저수시설이 남아있다. 나머지 구간은 성벽의 윤각만 흐릿하게 남아있다. 정상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너른 평지가 있고, 천년 묵은 느티나무 한 그루와 켜켜이 쌓인 돌무더기가 산성에 스민 역사를 전해준다. 군자산성의 초기축성은 어느 세력이 쌓았는지 수수께끼다. 축조형태를 보면 허술하다. 흙과 돌을 비벼가며 쌓았는데, 고대산성에서 이런 작은 규모의 산성은 백제시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군자산성은 삼국시대부터 남양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로를 지키는 요충지다. 군자봉에는 천년의 맥을 이은 성황당 터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곳에는 신라경순왕과 고려 서희장군의 무수한 전설이 떠돌고 있다. 신라 마지막 경순왕(김부대왕)의 안씨부인이 난을 피해 이곳 군자봉 구준물 마을에 살고 있었다. 안씨는 왕의 승하 비보를 들었지만, 난 중이라 갈 수 없어 군자봉에 초막을 짓고 3년동안 남편의 명복을 빌었다. 어느 날 밤 꿈에 경순왕이 나타나 부인의 정성을 치하하고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안씨는 평소 반신불수인 몸종을 불쌍히 여겨 왔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몸종의 병이 나아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사람들이 군자봉에 성황당을 짓고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경순왕의 마지막 부인으로 알려진 별빈 안씨는 실존성이 없는 민담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성종 때 관리였던 서희(942~998년)가 송나라 사신으로 가던 중 잿머리 해안에서 배를 타려다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 어려움에 처했다. 장도(壯途)를 비는 제를 지내고 잠이 든 서희의 꿈에 소복을 입은 두 여인이 나타났다. 두 여인은 경순왕의 안씨부인과 장모 홍씨였는데, 그들은 사당을 짓고 왕과 두 모녀의 영정을 두고 제사를 지내면 항해를 돕겠다고 했다. 서희는 그녀들의 소원대로 군자봉에 사당을 지었다. 거칠던 바다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이후부터 인근의 주민들이 해마다 음력 2월에 성황신인 경순왕과 안씨부인 및 장모인 홍씨의 영정을 모시고 내려와 구준물부터 시흥과 안산, 수원일대까지 돌았다.음력 10월에는 군자봉 사당에서 매년 제를 지내왔으나, 사당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는 군자봉의 당산나무 앞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고려 초기부터 시작된 군자봉 성황제는 이지역의 대대적인 축제행사였다. 하지만 조선시대후기부터 성황제는 소멸되기 시작했고, 무격신앙에서 민간신앙으로 변해갔다. 일제강점기에는 명맥이 끊어질듯했으나, 성황제는 맥을 이어 매년 음력 10월 3일에 열린다. 오색 빛깔의 천이 돌무더기 위에서 하늘거린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재앙과 천명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돌 하나하나에 배어 있다. 어느 고을에서든 익숙하게 마주할 수 있는 돌탑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흥성을 지켜봐왔다. 옛 부터 우리나라 산성에는 수호신이 있다고 믿어왔다. 산성은 그 자체가 종족을 지켜주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각종 신앙의식이 산성에서 행해지고 신화와 전설이 태어났다. 때문에 어떤 산성은 실존하는 신으로까지 숭배되기도 했다. 지역마다 성황당을 두었던 곳도 산성이고,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제천의식이 열린 곳도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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