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화는 강동육주중의 하나이다. 포선 방언 지역은 송대에는 흥화주(興化州)였다가 원대에는 흥화로(興化路), 명·청 양대에는흥화부(興化府)가 되었다. 강감찬은 상원수가 되어 부원수 강민첨(姜民瞻) 등과 함께 곳곳에서 거란군을 격파했다. 흥화진(興化鎭)전투에서는 1만 2,000여 명의 기병을 산골짜기에 매복시키고,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았다. 군사 20만 8000명을 이끌고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위에 쫓겨가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 하였다. 정동에서 광화문쪽 큰길로 나가면 건너 편에 경희궁의 입구인 흥화문(興化門)이 보인다. 분류:고려 분류:강동육주
흥화는 강동육주중의 하나이다. 포선 방언 지역은 송대에는 흥화주(興化州)였다가 원대에는 흥화로(興化路), 명·청 양대에는흥화부(興化府)가 되었다. 강감찬은 상원수가 되어 부원수 강민첨(姜民瞻) 등과 함께 곳곳에서 거란군을 격파했다. 흥화진(興化鎭)전투에서는 1만 2,000여 명의 기병을 산골짜기에 매복시키고, 굵은 밧줄로 쇠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냇물을 막았다. 군사 20만 8000명을 이끌고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위에 쫓겨가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 하였다. 정동에서 광화문쪽 큰길로 나가면 건너 편에 경희궁의 입구인 흥화문(興化門)이 보인다. 분류:고려 분류:강동육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