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관모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벽화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 건: 건은 머리가 흘러내리는 것을 감싸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가장 오래 사용한 소박한 쓰개이다. 건은 원래 중국 고대의 학자나 문인, 관직을 떠난 사람이 주로 착용한 쓰개로 한폭의 옷감을 주머니처럼 만든 형태이다. 남자가 20세 성인이 되면 관리는 모두 관을 썼지만 일반 서민도 관 대신 건을 사용하였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는 일반 남자들이 검은 헝겊을 머리에 둘러서 뒤로 매어 늘어뜨린 모양의 건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2.
* 책: 책은 건에서 출발한 두건 형태이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한국의 책은 대개 윗 부분이 없고 목에서 매어 고정시키며 중국의 책과 달리 후두부의 수식포인 수가 없는 형태이다. 책은 고구려 때 일반용 두건이 아니라 절풍보다 상위계급의 관모였다. 3.
* 절풍 ·소골: 절풍은 변 모양의 관모이다. 즉 모자의 끝이 뾰죽한 원뿔 모양의 관모로 변의 우리말인 고깔과 같은 형으로 생각된다. 절풍은 고구려에서 일반이 썼는데 사인은 여기에 2개의 조우를 장식하였다. 소골은 고구려에서 귀인이 쓴 모자로 절풍과 같은 원뿔 모양의 관모지만 자라로 만든 것이 특징이며 귀인이 흔히 사용했다. 절풍 ·소골 등과 같은 고깔 모양의 관모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가야 ·신라에서도 사용한 한국 고유의 관모의 기본 형태이다. 4.
* 조우관:조우관은 절풍 ·소골 등의 고깔 모양의 관모에 새깃을 장식한 것이다. 이것은 수렵시대의 유풍으로 북방 유라시아기마민족이 옛날부터 쓴 관모이
삼국시대의 관모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벽화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 건: 건은 머리가 흘러내리는 것을 감싸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가장 오래 사용한 소박한 쓰개이다. 건은 원래 중국 고대의 학자나 문인, 관직을 떠난 사람이 주로 착용한 쓰개로 한폭의 옷감을 주머니처럼 만든 형태이다. 남자가 20세 성인이 되면 관리는 모두 관을 썼지만 일반 서민도 관 대신 건을 사용하였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는 일반 남자들이 검은 헝겊을 머리에 둘러서 뒤로 매어 늘어뜨린 모양의 건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2.
* 책: 책은 건에서 출발한 두건 형태이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한국의 책은 대개 윗 부분이 없고 목에서 매어 고정시키며 중국의 책과 달리 후두부의 수식포인 수가 없는 형태이다. 책은 고구려 때 일반용 두건이 아니라 절풍보다 상위계급의 관모였다. 3.
* 절풍 ·소골: 절풍은 변 모양의 관모이다. 즉 모자의 끝이 뾰죽한 원뿔 모양의 관모로 변의 우리말인 고깔과 같은 형으로 생각된다. 절풍은 고구려에서 일반이 썼는데 사인은 여기에 2개의 조우를 장식하였다. 소골은 고구려에서 귀인이 쓴 모자로 절풍과 같은 원뿔 모양의 관모지만 자라로 만든 것이 특징이며 귀인이 흔히 사용했다. 절풍 ·소골 등과 같은 고깔 모양의 관모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가야 ·신라에서도 사용한 한국 고유의 관모의 기본 형태이다. 4.
* 조우관:조우관은 절풍 ·소골 등의 고깔 모양의 관모에 새깃을 장식한 것이다. 이것은 수렵시대의 유풍으로 북방 유라시아기마민족이 옛날부터 쓴 관모이다. 금속제 조우관이나 조우장식은 자연물을 장식하는 원시단계에서 변천된 것으로 귀족계급의 쓰개였다. 5.
* 금관: 금관은 관모에 자연물을 장식하던 풍습이 변천한 것으로 본다. 금관은 내관과 외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 내관은 변형모의 형태이며 외관은 대륜에 입식을 장식한 통수식 관으로 내관과 외관이 하나의 관을 이룬다. 경주 금관총 등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뿐만 아니라 관장식으로 사용된 진파리의 금제 관장식, 당서에 기록된 것과 같은 무녕왕릉의 금화 등 삼국시대의 화려한 문양의 관을 통하여 삼국이 서로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6.
* 입: 입은 한국 고유의 관모 형태이다. 더위와 비를 막는 실용적인 용도에서 서민 계층에서 썼다. 한국의 입에는 방립 계통과 폐량립 계통이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인물은 대우와 차양이 있는 폐량립과 삿갓같은 방립계통의 나제립을 쓰고 있다. 방립은 전통을 고수하는 승려와 농민의 삿갓으로 오늘날까지 사용되며 폐량립은 평량자, 흑립 등으로 조선시대에 이어졌다. 7.
* 건귁: 당서와 고구려 벽화를 통하여 부녀자들은 건귁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부녀자들이 일할 때 머리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머리수건을 둘러 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