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金城), 월성(月城) 또는 이활성(理活城)은 견고(堅固)한 성(城)이라는 뜻으로, 굳고 단단한 성 또는 굳게 방비(防備)된 성을 이른다. 경주의 신라시절 이름도 금성(金城)이었다. 신라사람들은 금관, 금팔찌 등 세계적 금세공품을 남겼다. 이란계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족도 금세공 기술이 눈부셨고, 신라금관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기 65년 탈해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가보게 하였다. 금빛의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호공이 보고한다. 금성공주 (金城公主 ?∼739)는 중국의 당(唐) 중종(中宗)의 조카 옹왕(雍王)수례(守禮)의 딸. 710년 당시 7세의 티베트왕 티데축첸(704∼754)의 왕비로 보내졌다.
금성(金城), 월성(月城) 또는 이활성(理活城)은 견고(堅固)한 성(城)이라는 뜻으로, 굳고 단단한 성 또는 굳게 방비(防備)된 성을 이른다. 경주의 신라시절 이름도 금성(金城)이었다. 신라사람들은 금관, 금팔찌 등 세계적 금세공품을 남겼다. 이란계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족도 금세공 기술이 눈부셨고, 신라금관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기 65년 탈해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가보게 하였다. 금빛의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호공이 보고한다. 금성공주 (金城公主 ?∼739)는 중국의 당(唐) 중종(中宗)의 조카 옹왕(雍王)수례(守禮)의 딸. 710년 당시 7세의 티베트왕 티데축첸(704∼754)의 왕비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