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사막한(拓跋沙漠汗, ? ~ 277년)은 중국 서진 초 삭두부(索頭部) 선비족의 왕자였다. 그는 탁발역미의 아들이였다. 그의 형제로는 탁발실록(拓跋悉鹿), 탁발작(拓跋綽), 탁발녹관(拓跋祿官)가 있었다. 261년 탁발역휘(拓跋力徽)가 조조의 위나라에 조공을 낙양에 바쳤다. 그는 낙양에 머물렀다. 이것이 훗날 위나라을 국호로 정하게 되는 한가지 이유가 되었다. 서진은 이들 세력을 이용해 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산서북부의 땅을 주어 살게했다. 276년 정북장군(征北將軍) 겸 유주자사였던 위관은 선비족의 왕자 탁발사막한(拓拔沙漠汗)이 진나라에 왔다가 돌아가려 할 때 조정에 그를 붙들어 놓게 하고 선비족의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주어 이간시켰다. 탁발사막한은 다음 해가 돼서야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내분이 일어난 상태였으며 선비족의 대인(大人)들에게 모함을 받아 죽었다. 이후에도 계속 정쟁으로 어지러웠기 때문에 한동안 선비족은 쇠퇴했다.
탁발사막한(拓跋沙漠汗, ? ~ 277년)은 중국 서진 초 삭두부(索頭部) 선비족의 왕자였다. 그는 탁발역미의 아들이였다. 그의 형제로는 탁발실록(拓跋悉鹿), 탁발작(拓跋綽), 탁발녹관(拓跋祿官)가 있었다. 261년 탁발역휘(拓跋力徽)가 조조의 위나라에 조공을 낙양에 바쳤다. 그는 낙양에 머물렀다. 이것이 훗날 위나라을 국호로 정하게 되는 한가지 이유가 되었다. 서진은 이들 세력을 이용해 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산서북부의 땅을 주어 살게했다. 276년 정북장군(征北將軍) 겸 유주자사였던 위관은 선비족의 왕자 탁발사막한(拓拔沙漠汗)이 진나라에 왔다가 돌아가려 할 때 조정에 그를 붙들어 놓게 하고 선비족의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주어 이간시켰다. 탁발사막한은 다음 해가 돼서야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내분이 일어난 상태였으며 선비족의 대인(大人)들에게 모함을 받아 죽었다. 이후에도 계속 정쟁으로 어지러웠기 때문에 한동안 선비족은 쇠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