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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륵(嘉勒) 일명 읍루는 고조선의 3세 단군이였다. 그는 1세 단군 왕검의 손자이시자 2세 단군 부루의 아들이였다. 단제는 두 왕자를 두었다. 이들 형제 중에 장자(長子)는 오사구(烏斯丘)이며,차자(次子)는 우사(雨師) 오사달(烏斯達)이었다. 첫 해에 맏아들 오사구(烏斯丘)를 태자로 삼았다. 기해 원년(bc 2182) 5월, 단제께서 삼랑 을보륵을 불러 신왕종전의 도(神王倧佺之道)를 물으셨다. 을보륵은 엄지 손가락을 교차시켜 바른손을 올려놓아 삼육대례를 행한 다음에 나아가서 말씀드렸다. 단기고사는 가륵 2년 봄에 박사 을보륵에게 명하여 국사(國史)를 편찬했다고 했다. 한단고기의 단군세기((檀君世紀)에 따르면, 3대 단군인 가륵이 삼랑 을보륵( 三郞乙普勒)을 시켜 이전의 문자를 다시 정리해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라고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역사 가운데 단군조선사 중에서 즉 단군의 역사 중에서 3세 단제(檀帝=檀君)이신 가륵 단제(嘉勒檀帝)께서 백성을 위하여 조서를 내렸다 이를 가륵조서(嘉勒詔書) 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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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륵(嘉勒) 일명 읍루는 고조선의 3세 단군이였다. 그는 1세 단군 왕검의 손자이시자 2세 단군 부루의 아들이였다. 단제는 두 왕자를 두었다. 이들 형제 중에 장자(長子)는 오사구(烏斯丘)이며,차자(次子)는 우사(雨師) 오사달(烏斯達)이었다. 첫 해에 맏아들 오사구(烏斯丘)를 태자로 삼았다. 기해 원년(bc 2182) 5월, 단제께서 삼랑 을보륵을 불러 신왕종전의 도(神王倧佺之道)를 물으셨다. 을보륵은 엄지 손가락을 교차시켜 바른손을 올려놓아 삼육대례를 행한 다음에 나아가서 말씀드렸다. 단기고사는 가륵 2년 봄에 박사 을보륵에게 명하여 국사(國史)를 편찬했다고 했다. 한단고기의 단군세기((檀君世紀)에 따르면, 3대 단군인 가륵이 삼랑 을보륵( 三郞乙普勒)을 시켜 이전의 문자를 다시 정리해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라고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역사 가운데 단군조선사 중에서 즉 단군의 역사 중에서 3세 단제(檀帝=檀君)이신 가륵 단제(嘉勒檀帝)께서 백성을 위하여 조서를 내렸다 이를 가륵조서(嘉勒詔書) 라 한다. 단군 8년조에 강거(중앙 아시아)가 반하므로 단제가 이를 지백특(티베트)에서 정벌하였다. 계미 45년(196년) 9월, 단제 붕어하시니 태자 오사구(烏斯丘)가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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