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읍성은 영천의 성이다. 영천 읍성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영천시 성내동 성내동은 동쪽으로 과전동, 북쪽으로는 교촌동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북천, 남쪽으로는 남천이 흐른다. 영천중앙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이 영천읍성비(영천읍성비)는 지난 1995년 6월 18일 영천향토사연구회에서 허물어진 영천읍성의 북동과 남서에 세운 유허비다. 영천읍 성은 이조 선조 때 축성한 것으로 안다. 선조는 24년 12월 폄거(貶去)라는 불명예를 안고 떠나고 만다. 이는 축성에 따른 백성들로부터 원망이 높아진 때문이다. 일본군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영천 읍성의 성문을 부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침내 일본군이 모두 줄행랑쳐 빠져나간 영천 읍성에 승리의 함성이 우렁찼다.
영천 읍성은 영천의 성이다. 영천 읍성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영천시 성내동 성내동은 동쪽으로 과전동, 북쪽으로는 교촌동과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북천, 남쪽으로는 남천이 흐른다. 영천중앙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이 영천읍성비(영천읍성비)는 지난 1995년 6월 18일 영천향토사연구회에서 허물어진 영천읍성의 북동과 남서에 세운 유허비다. 영천읍 성은 이조 선조 때 축성한 것으로 안다. 선조는 24년 12월 폄거(貶去)라는 불명예를 안고 떠나고 만다. 이는 축성에 따른 백성들로부터 원망이 높아진 때문이다. 일본군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영천 읍성의 성문을 부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침내 일본군이 모두 줄행랑쳐 빠져나간 영천 읍성에 승리의 함성이 우렁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