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fs:comment
| - 바흐 [Bach, Johann Sebastian,1714. 3. 8 작센바이마르 바이마르~ 1788. 12. 14 함부르크.]는 독일의 작곡가, 수난곡, 미사곡 등의 종교 음악과 여러 칸타타, 협주곡, 조곡 등의 관현악곡을 작곡하였다. 전기 고전주의 시대의 주도적 작곡가인 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 사이에 생존한 자식 중 둘째 아들이다. 바흐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계승하여 나름대로 독자적 위치에 이르렀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작곡과 건반악기 연주를 위해서 아버지 외에는 선생을 둔적이 없었다."고 썼다. 1735년 법학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음악 이외의 직업을 가질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1.
* 넘겨주기
|
abstract
| - 바흐 [Bach, Johann Sebastian,1714. 3. 8 작센바이마르 바이마르~ 1788. 12. 14 함부르크.]는 독일의 작곡가, 수난곡, 미사곡 등의 종교 음악과 여러 칸타타, 협주곡, 조곡 등의 관현악곡을 작곡하였다. 전기 고전주의 시대의 주도적 작곡가인 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 사이에 생존한 자식 중 둘째 아들이다. 바흐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계승하여 나름대로 독자적 위치에 이르렀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작곡과 건반악기 연주를 위해서 아버지 외에는 선생을 둔적이 없었다."고 썼다. 1735년 법학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음악 이외의 직업을 가질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1740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베를린 궁정 예배당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임명되었다.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였던 왕은 월요일과 금요일(1주일 중 2일은 오페라를 연주하게 함)을 제외한 매일 저녁에 협주곡의 밤을 마련해서 직속 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협주곡을 연주했다. 왕이 지나치게 굴종을 요구하여 관계가 점차 악화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왕을 모시다가 1767년에 결국 베를린을 떠나 함부르크 궁정의 음악감독(텔레만의 후임)으로 가게 되었다. 그동안 결혼을 했고(1744), 〈건반악기 연주법에 관한 소고 Versuch über die wahre Art das Klavier zu spielen〉(1753~62)를 출판하는 등 작곡가·연주가·선생으로 다른 음악가들이 선망하는 명성을 얻었다. 큰형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와는 달리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강력한 영향력을 나름대로 잘 소화해서 이를 당시 새롭게 싹트고 있던 신양식에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차원을 이룩했다. 이러한 그의 면모는 곧 과거와의 단절로 음악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로써 기념비적이고 웅대한 바로크 음악은 동시대 사람들이 '감정과다성'(Empfindsmkeit)이라고 즐겨 표현한 낭만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감정과다 양식 ). 그는 이 새로운 음악운동의 선두주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가르침과 본보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며, 아버지에게서 습득한 장인적 기교의 혜택을 입었다. 그는 종교음악(성모 찬가 1곡, 수난곡 22곡 등), 교향곡, 협주곡(플루트, 하프시코드, 피아노,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오르간, 오보에 등을 위한 여러 협주곡들), 오르간 소나타, 실내악, 노래 등 수많은 곡들을 작곡했다. 베를린 시절의 작품들은 후원자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의 보수적 성향으로 인해 다른 시기에 비해 다소 과거 지향적이었지만, 함부르크 시절에는 진취적인 성향을 보여 어느 시기보다도 미래지향적인 작품들을 썼다. 특히 그의 교향곡, 협주곡, 건반 소나타 등은 고전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줄여서 소나타 형식)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하이든·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만년에는 후배 작곡가인 하이든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이것은 하이든이 만년에 젊은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에 비견할 수 있다. 그의 〈건반악기 연주법에 관한 소고〉는 이후 두 세대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하이든은 이 책을 "논서 중의 논서"라고 극찬했으며, 모차르트는 "그는 대부이고 우리들은 그의 자식들"이라고 말했다. 한편 베토벤은 젊은 카를 체르니를 가르치면서 "에마누엘 바흐의 논서를 반드시 읽을 것"을 요구했다. 이 책은 실제로 18세기 음악양식 및 해석방법을 이해하는 데 필수 서적으로 숫자표 저음, 장식음, 손가락 주법 등을 포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18세기의 세련된 연주양식의 이해에 권위있는 지침서이다. 1.
* 넘겨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