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영(爾朱榮, 493년 ~ 530년 9월 25일)은 남북조 시대 북위의 장군으로, 자는 천보(天寶)이며 북수용(北秀容) 출신이다. 523년 북위에서는 옥야진 백성의 거병이 있었다. 파육한발릉(破六韓抜陵)이 수령(首領)인 반란병들은 수비대장을 살해하였고, 이들의 움직임에 홀려 기타 여러 진들에도 전염되었다.(육진의 난) 결과적으로 이 반란자체는 530년 장군 이주영이 진압했으나, 그 후 북위에 대한 양나라 군대의 침공이 있었고, 또한 국내는 정권을 장악한 이주씨 일파의 전횡이 일어나 북위가 동서로 분열하여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영태후는 효명제를 독살하고 후계자를 세우지만 육진의 난의 진압 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서성 삭현지방의 흉노족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이하 대신 1,000명을 처형했다.(하음의 변(河陰의 變)
이주 영(爾朱榮, 493년 ~ 530년 9월 25일)은 남북조 시대 북위의 장군으로, 자는 천보(天寶)이며 북수용(北秀容) 출신이다. 523년 북위에서는 옥야진 백성의 거병이 있었다. 파육한발릉(破六韓抜陵)이 수령(首領)인 반란병들은 수비대장을 살해하였고, 이들의 움직임에 홀려 기타 여러 진들에도 전염되었다.(육진의 난) 결과적으로 이 반란자체는 530년 장군 이주영이 진압했으나, 그 후 북위에 대한 양나라 군대의 침공이 있었고, 또한 국내는 정권을 장악한 이주씨 일파의 전횡이 일어나 북위가 동서로 분열하여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영태후는 효명제를 독살하고 후계자를 세우지만 육진의 난의 진압 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서성 삭현지방의 흉노족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이하 대신 1,000명을 처형했다.(하음의 변(河陰의 變) 이주영은 6진의 난을 평정하고 진양(晋陽)에서 조정을 움직였으나 이주씨 휘하의 장군 고환(高歡)이 그 폭정을 비판하여 이주씨와 대립하고 532년 낙양에 들어와 이주씨에 의해 세워진 절민제(節閔帝)을 폐위하고 효무제을 세웠다. 고환은 이주씨 일당을 각지에서 격파하여 정권은 그에게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