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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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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산은 모용부의 근거지였으며 후연의 수도 였다. 춘추시대에 중산국은 제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끼어있었다. 전국시대 악양은 위나라 대군을 이끌고 중산으로 진격했다. 그런데 중산에는 악양이 아들이 관리로 일하 고 있었다. 연나라 양왕은 국경을 황하까지 넓혀 제나라를 격파하고 중산을 평정 했다. 조나라 무령왕에게 중산국은 거의 다 병탄되며 변방 호타땅에 머무른 악의는 중산국 부류땅의 상왕(중산왕의 손자)을 위해서라도 부활의 끈을 놓지 않을려고 하면서 작전 회의 끝에 조와 우호관계를 있는 연나라쪽에 구원 요청을 하기로 합니다. 삼진과 함께 조나라를 도와 중산(中山)을 멸망시켰다. 진시황제는 조나라를 평정한 여세를 몰아 역수 남쪽에 있는 중산에 군대를 집결시킨 후 연나라로 총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비 ‘모용보’가 중산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색로(索虜 : 북위를 말함)에게 패하고 동쪽의 황룡(黃龍)으로 달아났다. 산서북단의 수령 탁발규(386-409)는 모용으로부터 진양, 중산, 업을 정복해 북위(魏)라는 왕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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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산은 모용부의 근거지였으며 후연의 수도 였다. 춘추시대에 중산국은 제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끼어있었다. 전국시대 악양은 위나라 대군을 이끌고 중산으로 진격했다. 그런데 중산에는 악양이 아들이 관리로 일하 고 있었다. 연나라 양왕은 국경을 황하까지 넓혀 제나라를 격파하고 중산을 평정 했다. 조나라 무령왕에게 중산국은 거의 다 병탄되며 변방 호타땅에 머무른 악의는 중산국 부류땅의 상왕(중산왕의 손자)을 위해서라도 부활의 끈을 놓지 않을려고 하면서 작전 회의 끝에 조와 우호관계를 있는 연나라쪽에 구원 요청을 하기로 합니다. 삼진과 함께 조나라를 도와 중산(中山)을 멸망시켰다. 진시황제는 조나라를 평정한 여세를 몰아 역수 남쪽에 있는 중산에 군대를 집결시킨 후 연나라로 총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용수는 자칭하며 후연을 건국하였는데, 전진의 부비 (?丕)가 지키는 업을 놓고 1년 동안 공방전을 벌였으며 385년 에 부비가 업을 버리자 업을 점령하여 하북을 평정하였으며 386년 에 중산(中山)에 도읍으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다. (모용)수가 중산을 도읍으로 정하고 신하들이 황제에 즉위하도록 권하자 전의(典儀)를 갖 추고 교요(郊燎)의 예를 행하였다. 선비 ‘모용보’가 중산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색로(索虜 : 북위를 말함)에게 패하고 동쪽의 황룡(黃龍)으로 달아났다. 산서북단의 수령 탁발규(386-409)는 모용으로부터 진양, 중산, 업을 정복해 북위(魏)라는 왕조를 세웠다. 탁발규가 하북 일대를 석권하자 모용보는 중산, 업, 신도 등의 거점을 중심으로 농성을 시작하였다. 모용농과 모용온은 중산 일대에서 적진의 세력과 대치하면서 민호를 수습하는데 주력하였다.탁발규의 군대는 약화되었고, 중산도 아직 건재하며, 업도 모용덕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전달된 셈이니 모용보가 상황을 잘못 판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397년 에 탁발규가 신도를 함락하자 모용보는 1만의 기병만 이끌고 몰래 중산을 빠져나와 모용회의 군대를 향해 말을 달렸다. 수도 중산, 아직 성안에는 수만의 병력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성문도 활짝 열린 채로 남아 있었다. 모용보는 모용린이 유주의 군대를 탈취할 것을 두려워하여 중산을 버리고 용성(龍城)으로 천도하였다. 용성으로 이동하던 도중 서장자 모용회(慕容會)의 군대를 만났다. 반란군이 모용보를 축출하고 용성(龍城)을 점령한 뒤에 내분을 일으키자 이를 기회로 반란군을 일소하고 태자 모용책(慕容策)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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