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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험독(險瀆)은 단군조선 시대 기원전 2333년경부터 있었던 번한의 제1수도이다. 갈석산(曷石山)이 있는 창려 지역이다. 동쪽의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산해관이 자리하는 곳이다. 위씨조선의 수도이기도 하다. 랴오둥군의 속현인 험독(險瀆)을 조선계 지명인‘검터’의 한자어 표기인 검독으로 이해하고 이를 왕검성에 비정하였다. 중국 사가(中國 史家)들은 조선의 수도 왕검(王險)을 험독(險瀆)이라는 다른 명칭으로도 불렀다. 왕검성은 천연의 요새지로 난공불락의 성을 뜻한다. 그리고 성(城) 주위로 물줄기가 험하고 산세가 사나워 험독(險瀆)이라고 했다. 번한(番韓)은 진한관경의 서쪽을 지키는 비왕으로서, 전기에는 치우천왕의 후손인 치씨(蚩氏), 후기에는 단군조선 종실인 한씨(桓氏)가 봉해졌으며, 번한관경은 지금의 발해만 유역과 산동지역을 포함하며, 수도는 소위 오덕지(五德地)로서 모두 왕검성이라 불리며, 동서남북중의 험독(險瀆), 한성(汗城), 낭야성(琅耶城),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불리는 탕지(湯池), 안덕향(安德鄕)이라 불리는 개평(蓋平) 등 5경(京)을 두었다. 번한관경 내의 군후국으로는 청구(靑邱), 남국(藍國), 고죽(孤竹), 엄(淹), 래(萊), 개(介), 양(陽), 우(隅), 서(徐), 회(淮)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후기 단군조선 시대에 대산(大山)도 있었다. 위만고조선의 도읍지 험독 (險瀆) 1145년(인종 23)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 역사서인 <삼국사기>권 제29 ‘년표’에 기자(箕子)와 위만(衛滿)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백제는 538년에 사비성(泗泌城,사비성은 사방이 강물로 둘러싸인 성, 즉 조선 국도의 별칭인 험독(險瀆)이라는 뜻이 있다-남부여라 하였다)으로 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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