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티낙스 [Publius Helvius Pertinax, 126. 8. 1 리구리아~ 193. 3. 28.]는 로마의 황제(193. 1~3 재위)이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페르티낙스. 너무 안타깝게 죽은 비운의 황제이다. 로마제국은 해방노예의 아들인 페르티낙스가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지만 군인황제시대도 겪었다. 해방 노예 헬비우스 수세서스의 아들인 페르티낙스는 교사로 일하다 30대 중반에 진로를 바꾸어 군대에 들어가 시리아, 브리튼, 도나우 강, 라인 강 등지에서 부대를 지휘했다. 그는 169년 게르만족이 대대적인 침입을 해왔을 때 명성을 날렸다. 원로원 의원이 되고 레기온(보병 군단)의 지휘를 맡게 된 그는 곧이어 모이시아·다키아·시리아를 관할하는 사령관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근위대장)인 페렌니스가 상승가도를 달리는 동안 뒤에 황제가 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함께 콤모두스 황제(180~192 재위)의 총애를 잃었다. 콤모두스 황제의 치세가 끝날 무렵 그는 로마의 콘술(집정관)이 되었고 세베루스는 도나우 강 상류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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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티낙스 [Publius Helvius Pertinax, 126. 8. 1 리구리아~ 193. 3. 28.]는 로마의 황제(193. 1~3 재위)이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페르티낙스. 너무 안타깝게 죽은 비운의 황제이다. 로마제국은 해방노예의 아들인 페르티낙스가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지만 군인황제시대도 겪었다. 해방 노예 헬비우스 수세서스의 아들인 페르티낙스는 교사로 일하다 30대 중반에 진로를 바꾸어 군대에 들어가 시리아, 브리튼, 도나우 강, 라인 강 등지에서 부대를 지휘했다. 그는 169년 게르만족이 대대적인 침입을 해왔을 때 명성을 날렸다. 원로원 의원이 되고 레기온(보병 군단)의 지휘를 맡게 된 그는 곧이어 모이시아·다키아·시리아를 관할하는 사령관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근위대장)인 페렌니스가 상승가도를 달리는 동안 뒤에 황제가 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함께 콤모두스 황제(180~192 재위)의 총애를 잃었다. 콤모두스 황제의 치세가 끝날 무렵 그는 로마의 콘술(집정관)이 되었고 세베루스는 도나우 강 상류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콤모두스가 192년 12월 31일 암살당하자 원로원은 새벽이 오기도 전에 회의를 열고 당시 제국의 장군인 페르티낙스를 황제로 선포했다. 그는 일반 경비뿐만 아니라 군사비의 지출도 억제하려 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제위에 오른 지 채 3개월도 못 되어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암살당했다. 뒤이어 같은 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세베루스는 칙령을 내려 피살당한 통치자를 기리는 성스러운 장소를 마련하고 거기에 페르티낙스의 이름을 붙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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