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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평은 요동군의 치소였다. 전국 시대 연나라는 진개로 하여금 동호를 공격하여 천리나 물러나게 한 후, 조양으로부터 양평에까지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의 군을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다. 적벽대전은 208년이고, 원소의 아들들이 요동의 공손강에게 죽은게 207년이므로 그 당시에는 공손강이 요동, 양평을 지배하고 있었다.서기 207년, 공손강은 원상을 추격하여 올라온 조조에게 원상의 수급을 바치고 양평후(襄平侯)라는 작위를 받았다. 그의 슬하에는 장남 황(晃)과 차남 공손연(淵)이 있었다. 요동군(遼東郡)이 있는 곳이 양평(襄平)이고, 양평(襄平)은 요양(遼陽) 방면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히 요동군(遼東郡)에 양평현(襄平縣)이 있었고, 요양(遼陽) 북 70리 되는 곳을 양평(襄平)이라 한다. 기통(紀通)을 후(侯)로 봉한 양평(襄平)은 난하이다. 즉 동남으로 흘러 양평현(襄平縣) 서쪽으로 해서 바다로 들어간 대요수(大遼水)는 난하이다. 당나라 시대,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는 옛 한(漢)의 양평성(襄平城)이다. 분류:요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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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양평은 요동군의 치소였다. 전국 시대 연나라는 진개로 하여금 동호를 공격하여 천리나 물러나게 한 후, 조양으로부터 양평에까지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의 군을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다. 적벽대전은 208년이고, 원소의 아들들이 요동의 공손강에게 죽은게 207년이므로 그 당시에는 공손강이 요동, 양평을 지배하고 있었다.서기 207년, 공손강은 원상을 추격하여 올라온 조조에게 원상의 수급을 바치고 양평후(襄平侯)라는 작위를 받았다. 그의 슬하에는 장남 황(晃)과 차남 공손연(淵)이 있었다. 요동군(遼東郡)이 있는 곳이 양평(襄平)이고, 양평(襄平)은 요양(遼陽) 방면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히 요동군(遼東郡)에 양평현(襄平縣)이 있었고, 요양(遼陽) 북 70리 되는 곳을 양평(襄平)이라 한다. 기통(紀通)을 후(侯)로 봉한 양평(襄平)은 난하이다. 즉 동남으로 흘러 양평현(襄平縣) 서쪽으로 해서 바다로 들어간 대요수(大遼水)는 난하이다. 당나라 시대,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는 옛 한(漢)의 양평성(襄平城)이다. 분류:요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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