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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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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균(金玉均, 1851년 1월 23일 충청남도 공주 ~ 1894년 3월 28일)은 구한말의 개화파이다.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 김옥균은 조선 시대 말기의 정치가(1851~1894)입니다.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지향했던 급진개화파의 지도자로서 갑신정변(1884)을 주도했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 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갑신정변의 주동 인물이던 김옥균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1872년 과거에 급제한 후 1874년 홍문관 교리가 되었습니다.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 등의 영향을 받고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81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살펴보고 귀국한 뒤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김옥균은 새 정부의 호조 참판이 되어 재정권을 손에 쥐었으나 청나라의 간섭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자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일본의 비밀결사인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 현양사(玄洋社)는 흑룡회(黑龍會)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하였다. 중국의 소문(孫文)도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김옥균을 김좌진의 백부라고 쓰고 있다. 김옥균과 김좌진은 모두 안동 김씨지만, 촌수로는 20촌이 넘는 그냥 같은 문중일 뿐이다. 분류:장군의 아들 분류:갑신 정변 분류:개화
  • 김옥균은 조선 시대 말기의 정치가(1851~1894)입니다.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지향했던 급진개화파의 지도자로서 갑신정변(1884)을 주도했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 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갑신정변의 주동 인물이던 김옥균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1872년 과거에 급제한 후 1874년 홍문관 교리가 되었습니다.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 등의 영향을 받고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81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살펴보고 귀국한 뒤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일본의 비밀 결사인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 현양사(玄洋社)는 흑룡회(黑龍會)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하였다. 중국의 소문(孫文)도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김옥균은 새 정부의 호조 참판이 되어 재정권을 손에 쥐었으나 청나라의 간섭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자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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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균(金玉均, 1851년 1월 23일 충청남도 공주 ~ 1894년 3월 28일)은 구한말의 개화파이다.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 김옥균은 조선 시대 말기의 정치가(1851~1894)입니다.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지향했던 급진개화파의 지도자로서 갑신정변(1884)을 주도했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 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갑신정변의 주동 인물이던 김옥균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1872년 과거에 급제한 후 1874년 홍문관 교리가 되었습니다.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 등의 영향을 받고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81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살펴보고 귀국한 뒤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김옥균은 새 정부의 호조 참판이 되어 재정권을 손에 쥐었으나 청나라의 간섭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자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일본의 비밀결사인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 현양사(玄洋社)는 흑룡회(黑龍會)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하였다. 중국의 소문(孫文)도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냉대 속에서 지내던 김옥균은 중국 상하이로 건너 갔다가, 홍종우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가 다시 개화파에 의해 내각이 새로 조직되자 김홍집의 건의로 김옥균의 죄가 용서되고 순종 때에는 규장각 대제학의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김옥균을 김좌진의 백부라고 쓰고 있다. 김옥균과 김좌진은 모두 안동 김씨지만, 촌수로는 20촌이 넘는 그냥 같은 문중일 뿐이다. 분류:장군의 아들 분류:갑신 정변 분류:개화
  • 김옥균은 조선 시대 말기의 정치가(1851~1894)입니다. 근대 부르주아 혁명을 지향했던 급진개화파의 지도자로서 갑신정변(1884)을 주도했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 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갑신정변의 주동 인물이던 김옥균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1872년 과거에 급제한 후 1874년 홍문관 교리가 되었습니다. 박규수, 유대치, 오경석 등의 영향을 받고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81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살펴보고 귀국한 뒤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일본의 비밀 결사인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 현양사(玄洋社)는 흑룡회(黑龍會)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하였다. 중국의 소문(孫文)도 현양사(玄洋社)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김옥균은 새 정부의 호조 참판이 되어 재정권을 손에 쥐었으나 청나라의 간섭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자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일본 정부의 냉대 속에서 지내던 김옥균은 중국 상하이로 건너 갔다가, 홍종우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가 다시 개화파에 의해 내각이 새로 조직되자 김홍집의 건의로 김옥균의 죄가 용서되고 순종 때에는 규장각 대제학의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김옥균을 김좌진의 백부라고 쓰고 있다. 김옥균과 김좌진은 모두 안동 김씨지만, 촌수로는 20촌이 넘는 그냥 같은 문중일 뿐이다. 분류:장군의 아들 분류:갑신 정변 분류:개화 분류:조선의 총잡이 분류:명옥 분류:명균 분류:균형의 옥좌 분류:수옥 분류:김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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