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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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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모성(窮牟城)은 조그마한 성이었다. 지금 황해도 중북부 서흥이다. 669년 검모잠은 궁모성을 근거지로 군사를 일으켜, 왕족인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하고 당군에 저항하였다. 검모잠은 고구려가 멸망하자 670년 유민들을 규합해서 당나라의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궁모성(窮牟城)에서 패수(대동강) 남쪽으로 옮겨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궁모성(窮牟城)의 처려근지(處閭近支)인 검모잠(劍牟岑)이란 장수가 자기 휘하의 군사 5천과 귀홀성(龜忽城)의 군사 7천을 거느리고 당군의 진격로를 가로막아 결사 항전을 벌였다. 또 박작성주(所夫孫主) 소부손(所夫孫)이 거느린 군사 5천과 추정국의 뒤를 이어 오골성주(烏骨城主)에 임명된 고돌발의 군사 8천이 연합작전을 벌여 압록수 하구에 정박하고 있는 1천여척의 군선을 화공(火攻)으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계필하력은 6만의 대군 가운데 고작 8천의 전투병력을 남겨 군선을 지키게 했기 때문에 박작성과 오골성의 고구려군이 당나라의 군선을 쉽게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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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모성(窮牟城)은 조그마한 성이었다. 지금 황해도 중북부 서흥이다. 669년 검모잠은 궁모성을 근거지로 군사를 일으켜, 왕족인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하고 당군에 저항하였다. 검모잠은 고구려가 멸망하자 670년 유민들을 규합해서 당나라의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궁모성(窮牟城)에서 패수(대동강) 남쪽으로 옮겨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궁모성(窮牟城)의 처려근지(處閭近支)인 검모잠(劍牟岑)이란 장수가 자기 휘하의 군사 5천과 귀홀성(龜忽城)의 군사 7천을 거느리고 당군의 진격로를 가로막아 결사 항전을 벌였다. 또 박작성주(所夫孫主) 소부손(所夫孫)이 거느린 군사 5천과 추정국의 뒤를 이어 오골성주(烏骨城主)에 임명된 고돌발의 군사 8천이 연합작전을 벌여 압록수 하구에 정박하고 있는 1천여척의 군선을 화공(火攻)으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계필하력은 6만의 대군 가운데 고작 8천의 전투병력을 남겨 군선을 지키게 했기 때문에 박작성과 오골성의 고구려군이 당나라의 군선을 쉽게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승은 검모잠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휘하 군사들을 이끌고 금마저로 향했다. 대조영은 궁모성을 향해 행군을 계속했다. 첩자를 보내 궁모성 상황을 알아보니 오합지졸과 다름없었다. 궁모성에서 출발. 압록수를 거쳐서 다시 송화강으로 돌아가 올라가면 그 길은 실위에 가는 길 중 제일 가까운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분류:검모잠 분류:서흥의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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