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fs:comment
| - 관미성(關彌城)은 백제가 자랑하는 한강입구로 들어가는 강화도 해안의 수군기지였다. 기준(箕準)왕은 平壤(평양)에서 27년 재위하고 B.C 194년 위만(衛滿)에게 왕험성(관미성)을 빼앗긴 후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전라남도 海南(해남)에 들어가 금마(金馬)에 도읍을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392년 백제 진사왕이 사망, 아신왕 즉위하였다. 392년 10월, 광개토대왕은 즉위 원년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백제의 수군기지인 관미성을 공격해 20일 만에 함락시켰다. 고구려가 관미성을 함락시키자 백제 아신왕이 친위병을 이끌고 쳐들어 오기도 했다. 백제 아신왕을 굴복시켜 아우로 삼고, 왕위에 오르다. 396년에 수군(水軍)을 금강하류 방면에 상륙시켜 구태백제를 괴멸시키고 이어서 보기병이 한강을 건너 온조백제를 항복 받았다.
- 관미성(關彌城)은 백제가 자랑하는 한강입구로 들어가는 강화도 해안의 수군기지였다. 관미성(關彌城)은 백제(百濟) 북쪽의 요해처(要害地)로써 신채호와 문정창은 강화도(江華島), 이병도와 천관우, 박성봉, 이기동 등은 교동도(喬桐島), 김성호는 황해도 금천군 조읍리, 박시형과 이형구, 이도학은 예성강(禮成江) 남안(南岸) 개성부근, 이홍직은 임진강과 한강의 교회 지점부근, 김정호(金正浩)에 이어 윤일녕(尹日寧)는 오두산성(烏頭山城)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이중에서도 이도학(李道學)은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0년에 왕이 말갈군을 곤미천에서 방어하다가 패한 백제군이 청목산으로 후퇴하였다는 기사에서 곤미천(昆彌川)을 예성강(禮成江), 청목산(靑木山)을 개풍군 청석령(靑石嶺)으로 비정하고 진사왕 3년조에 보이는 "관미령(關彌嶺)"을 곤미천(昆彌川) 및 관미성(關彌城)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았다. 기준(箕準)왕은 平壤(평양)에서 27년 재위하고 B.C 194년 위만(衛滿)에게 왕험성(관미성)을 빼앗긴 후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전라남도 海南(해남)에 들어가 금마(金馬)에 도읍을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
abstract
| - 관미성(關彌城)은 백제가 자랑하는 한강입구로 들어가는 강화도 해안의 수군기지였다. 관미성(關彌城)은 백제(百濟) 북쪽의 요해처(要害地)로써 신채호와 문정창은 강화도(江華島), 이병도와 천관우, 박성봉, 이기동 등은 교동도(喬桐島), 김성호는 황해도 금천군 조읍리, 박시형과 이형구, 이도학은 예성강(禮成江) 남안(南岸) 개성부근, 이홍직은 임진강과 한강의 교회 지점부근, 김정호(金正浩)에 이어 윤일녕(尹日寧)는 오두산성(烏頭山城)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이중에서도 이도학(李道學)은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0년에 왕이 말갈군을 곤미천에서 방어하다가 패한 백제군이 청목산으로 후퇴하였다는 기사에서 곤미천(昆彌川)을 예성강(禮成江), 청목산(靑木山)을 개풍군 청석령(靑石嶺)으로 비정하고 진사왕 3년조에 보이는 "관미령(關彌嶺)"을 곤미천(昆彌川) 및 관미성(關彌城)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았다. 관미성에서 "관"이란 "빗장을 닫는다"는 뜻이고 "미"는 "물"을 뜻하여 "관미"란 "하구(河口)를 막고 있는 요새"라는 뜻이 된다. 즉 물건너 김포의 동성 산성과 같이 빗장을 거는 형세이다. 이러한 형태는 행주 산성과 궁산 토성이 있는데 궁산 토성은 "관산(關山)"으로도 불리워져 이곳이 행주 산성과 더불어 빗장을 거는 형세였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한록 산성은 오두 산성의 서쪽으로 연결된 117미터의 한록산에 있는 옛성으로 주위가 1리이다. 기준(箕準)왕은 平壤(평양)에서 27년 재위하고 B.C 194년 위만(衛滿)에게 왕험성(관미성)을 빼앗긴 후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전라남도 海南(해남)에 들어가 금마(金馬)에 도읍을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392년 백제 진사왕이 사망, 아신왕 즉위하였다. 392년 10월, 광개토대왕은 즉위 원년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백제의 수군기지인 관미성을 공격해 20일 만에 함락시켰다. 고구려가 관미성을 함락시키자 백제 아신왕이 친위병을 이끌고 쳐들어 오기도 했다. 백제 아신왕을 굴복시켜 아우로 삼고, 왕위에 오르다. 396년에 수군(水軍)을 금강하류 방면에 상륙시켜 구태백제를 괴멸시키고 이어서 보기병이 한강을 건너 온조백제를 항복 받았다.
- 관미성(關彌城)은 백제가 자랑하는 한강입구로 들어가는 강화도 해안의 수군기지였다. 기준(箕準)왕은 平壤(평양)에서 27년 재위하고 B.C 194년 위만(衛滿)에게 왕험성(관미성)을 빼앗긴 후 좌우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전라남도 海南(해남)에 들어가 금마(金馬)에 도읍을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392년 백제 진사왕이 사망, 아신왕 즉위하였다. 392년 10월, 광개토대왕은 즉위 원년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백제의 수군기지인 관미성을 공격해 20일 만에 함락시켰다. 고구려가 관미성을 함락시키자 백제 아신왕이 친위병을 이끌고 쳐들어 오기도 했다. 백제 아신왕을 굴복시켜 아우로 삼고, 왕위에 오르다. 396년에 수군(水軍)을 금강하류 방면에 상륙시켜 구태백제를 괴멸시키고 이어서 보기병이 한강을 건너 온조백제를 항복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