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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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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청(衛靑)은 전한의 한무제의 장군으로 장평후(長平侯)가 되었다. 그는 하동 평양(산서성 임분 山西省 臨汾) 출신이였다. 모친은 비(婢)였던 위온이며 누나는 한무제의 황후 무사황후이다. 한무제는 위청과 곽거병 등으로 하여금 흉노를 소탕케 하였다. 전한 시대동안 한무제가 위청을 보내 허타오지역을 흉노로부터 빼앗았다. (기원전 127년) 점령 후에는 흉노의 공격을 막기 위해 허타오 지역에 계속해서 정착촌을 건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동안 삭방(朔方)과 오원(五原) 군을 설치했다. 이 시기에 내몽고 동부지역은 선비족이 점령했다. 선비는 이후 흉노가 한에게 굴복한 후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분묘(墳墓)는 곽거병의 묘 인근인 무제의 분묘인 무릉(茂陵)의 근처에 남아있다.
  • 위청(衛靑)은 전한의 한무제의 장군으로 장평후(長平侯)가 되었다. 그는 하동 평양(산서성 임분 山西省 臨汾) 출신이였다. 모친은 비(婢)였던 위온이며 누나는 한무제의 황후 무사황후이다. 한 무제의 숙원사업이던 흉노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장군 위청은 하동군 평양현(河東郡 平陽縣 ; 지금의 산서성)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정계(鄭季)는 평양현의 말단 벼슬아치로 한 무제의 매부인 평양후(平陽候) 조수(曺守)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정계가 평양후의 노비였던 위온(衛溫)과 간통하여 낳은 아기가 위청인데, 위청의 동복형으로 위장자(衛長子)와 누나 위자부(衛子夫)가 있었다. 그런데 위자부가 평양 공주(平陽公主)의 추천으로 무제의 후궁이 되자, 노비의 자식으로 멸시를 받던 위청은 정씨에서 위씨로 성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을 바꾸었다. 한무제는 위청과 곽거병 등으로 하여금 흉노를 소탕케 하였다. 어려서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던 곽거병은 기원전 123 18세의 나이에 표도교위에 임명되어 8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외삼촌인 대장군 위청을 따라 출정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분묘(墳墓)는 곽거병의 묘 인근인 무제의 분묘인 무릉(茂陵)의 근처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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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청(衛靑)은 전한의 한무제의 장군으로 장평후(長平侯)가 되었다. 그는 하동 평양(산서성 임분 山西省 臨汾) 출신이였다. 모친은 비(婢)였던 위온이며 누나는 한무제의 황후 무사황후이다. 한무제는 위청과 곽거병 등으로 하여금 흉노를 소탕케 하였다. 전한 시대동안 한무제가 위청을 보내 허타오지역을 흉노로부터 빼앗았다. (기원전 127년) 점령 후에는 흉노의 공격을 막기 위해 허타오 지역에 계속해서 정착촌을 건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동안 삭방(朔方)과 오원(五原) 군을 설치했다. 이 시기에 내몽고 동부지역은 선비족이 점령했다. 선비는 이후 흉노가 한에게 굴복한 후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분묘(墳墓)는 곽거병의 묘 인근인 무제의 분묘인 무릉(茂陵)의 근처에 남아있다.
  • 위청(衛靑)은 전한의 한무제의 장군으로 장평후(長平侯)가 되었다. 그는 하동 평양(산서성 임분 山西省 臨汾) 출신이였다. 모친은 비(婢)였던 위온이며 누나는 한무제의 황후 무사황후이다. 한 무제의 숙원사업이던 흉노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장군 위청은 하동군 평양현(河東郡 平陽縣 ; 지금의 산서성)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정계(鄭季)는 평양현의 말단 벼슬아치로 한 무제의 매부인 평양후(平陽候) 조수(曺守)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정계가 평양후의 노비였던 위온(衛溫)과 간통하여 낳은 아기가 위청인데, 위청의 동복형으로 위장자(衛長子)와 누나 위자부(衛子夫)가 있었다. 그런데 위자부가 평양 공주(平陽公主)의 추천으로 무제의 후궁이 되자, 노비의 자식으로 멸시를 받던 위청은 정씨에서 위씨로 성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을 바꾸었다. 한무제는 위청과 곽거병 등으로 하여금 흉노를 소탕케 하였다. 전한 시대동안 한무제가 위청을 보내 허타오지역을 흉노로부터 빼앗았다. (기원전 127년) 점령 후에는 흉노의 공격을 막기 위해 허타오 지역에 계속해서 정착촌을 건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동안 삭방(朔方)과 오원(五原) 군을 설치했다. 이 시기에 내몽고 동부 지역은 선비족이 점령했다. 선비는 이후 흉노가 한에게 굴복한 후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그는 무제에게 발탁되어 기원전 130년부터 119년까지 10여 년 동안 흉노를 일곱 차례나 원정하여 큰 공을 세워 대장군이 되었는데, 역시 평양후 조수의 집에서 일하던 곽중유(藿仲孺)와 평양공주의 시녀인 위소아(衛少兒)와 사이에서 태어난 곽거병(藿去病; 기원전 140 ~ 기원전 117)은 위자부와 위소아가 자매사이였으므로 위청과는 외삼촌과 조카사이였다. 어려서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던 곽거병은 기원전 123 18세의 나이에 표도교위에 임명되어 8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외삼촌인 대장군 위청을 따라 출정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분묘(墳墓)는 곽거병의 묘 인근인 무제의 분묘인 무릉(茂陵)의 근처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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