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석이 졸하고 그 이후의 행적은 기록에 보이질 않고 그 뒤 <연소공세가>에 의하면 소공석 이후 9세에 이르러 연혜후가 등장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당시의 정세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사기 주본기="주본기">에 려왕이 소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 안에서는 아무도 감히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그런 상태로 3년이 되던 해에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나 려왕을 습격하였다. 려왕은 백성들을 피해 체(彘)로 달아났다. 이해가 공화(共和) 원년으로써 기원전 841년의 일이었다. 주려왕이 백성들을 피해 체(彘)로 달아났던 시기가 곧 <연소공세가>에서 등장하는 연혜후라고 볼때 연혜후가 난리통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바 <사기 주본기="주본기">의 소공이 려왕의 태자를 살리기 위해 소공의 아들인 연혜후를 대신 죽게 하였고, 연혜후 대신 소공의 다른 아들인 연리후가 옹립 된 것이다.
소공석이 졸하고 그 이후의 행적은 기록에 보이질 않고 그 뒤 <연소공세가>에 의하면 소공석 이후 9세에 이르러 연혜후가 등장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당시의 정세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사기 주본기="주본기">에 려왕이 소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 안에서는 아무도 감히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그런 상태로 3년이 되던 해에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나 려왕을 습격하였다. 려왕은 백성들을 피해 체(彘)로 달아났다. 이해가 공화(共和) 원년으로써 기원전 841년의 일이었다. 려왕의 태자 정(靜)이 소공의 집에 숨어 있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게 되어 몰려와 소공의 집을 에워싸고 태자를 잡아서 죽이려고 하였다. 소공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소공이 말을 마치고 즉시 그의 아들을 대신 백성들에게 내주어 죽게 하고 태자 정을 달아날 수 있게 하였다. 소공과 주공이 상국(相國)이 되어 왕 대신 주나라를 다스렸다. 이 기간 동안을 공화(共和)라고 한다. 공화 14년 즉 기원전 828년에 려왕이 체(彘)에서 죽었다. 그때 태자 정(靜)은 소공(召公)의 집에서 숨어살면서 장성하게 되었다. 두 상국(相國)이 뜻을 같이하여 태자 정을 추대하여 왕으로 세웠다. 이가 선왕(宣王)이다. 주려왕이 백성들을 피해 체(彘)로 달아났던 시기가 곧 <연소공세가>에서 등장하는 연혜후라고 볼때 연혜후가 난리통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바 <사기 주본기="주본기">의 소공이 려왕의 태자를 살리기 위해 소공의 아들인 연혜후를 대신 죽게 하였고, 연혜후 대신 소공의 다른 아들인 연리후가 옹립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