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5일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로 이승만 후보를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부정선거로 밝혀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무효 처리되었다. 부정선거 전날 자유당은 모든 선거함에 이승만과 이기붕이 찍혀 있는 위조 투표지를 무더기로 집어넣었고, 당일에는 한 사람이 투표지를 20장까지 가져가는 등의 선거 조작 행위를 저질렀다. 또한 자유당 당원들이 기표소까지 들어가 감시하는 등의 부정이 있었다. 이에 민주당은 오후 4시 30분에 “3·15선거는 선거가 아니라 선거의 이름 하에 이루어진 국민주권에 대한 포악한 강도 행위”라고 규정하고 불법, 무효임을 선언했다. 개표 과정 중에는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표가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자 이를 79%로 하향 조정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선거 이후 마산 등지에서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3·15 마산시위)가 발생하였으며 4·19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3·15 부정선거 (三一五不正選擧) 는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회 대통령 선거 및 제5회 부통령 선거에서 개표 조작을 통해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권력을 유지한 사건입니다.
1960년 3월 15일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로 이승만 후보를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부정선거로 밝혀져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무효 처리되었다. 부정선거 전날 자유당은 모든 선거함에 이승만과 이기붕이 찍혀 있는 위조 투표지를 무더기로 집어넣었고, 당일에는 한 사람이 투표지를 20장까지 가져가는 등의 선거 조작 행위를 저질렀다. 또한 자유당 당원들이 기표소까지 들어가 감시하는 등의 부정이 있었다. 이에 민주당은 오후 4시 30분에 “3·15선거는 선거가 아니라 선거의 이름 하에 이루어진 국민주권에 대한 포악한 강도 행위”라고 규정하고 불법, 무효임을 선언했다. 개표 과정 중에는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표가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자 이를 79%로 하향 조정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선거 이후 마산 등지에서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3·15 마산시위)가 발생하였으며 4·19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3·15 부정선거 (三一五不正選擧) 는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회 대통령 선거 및 제5회 부통령 선거에서 개표 조작을 통해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권력을 유지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