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趙-,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8년)는 진(晉)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온 나라로서 전국시대의 전국칠웅 중 하나이다. 위나라, 한나라와 더불어 삼진(三晉)이라고 일컬어진다. 북쪽엔 연나라와 붙어있고 남쪽에는 황하가 흐르고 있다. 호복(胡腹, 통소매와 바지)을 채용하였고, 중국에 처음 기마전술을 도입한 나라이기도 한다. 갑병 수십만과, 전차 천승, 말(馬) 만필을 낼 수 있었다. 기원전 222년 진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망한다. 도읍인 한단(邯鄲)은 상공업의 대중심지였다. 조(趙)나라에 인상여 (藺相如)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담력과 책략이 뛰어나고 식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도량이 아주 큰 사람이였다.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이 화씨(和氏)의 벽(璧) 이라는 진귀한 옥(玉)을 가지고 있는 것을 조나라 서쪽의 강국인 진나라가 알아내었다. 진나라에 조 왕을 모시고 협상하려고 갔다가 진왕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제나라와 위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조나라는 황하의 제방을 터뜨려 상대 군사들을 수장해 버리기도 했었다.
조나라(趙-,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8년)는 진(晉)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온 나라로서 전국시대의 전국칠웅 중 하나이다. 위나라, 한나라와 더불어 삼진(三晉)이라고 일컬어진다. 북쪽엔 연나라와 붙어있고 남쪽에는 황하가 흐르고 있다. 호복(胡腹, 통소매와 바지)을 채용하였고, 중국에 처음 기마전술을 도입한 나라이기도 한다. 갑병 수십만과, 전차 천승, 말(馬) 만필을 낼 수 있었다. 기원전 222년 진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망한다. 도읍인 한단(邯鄲)은 상공업의 대중심지였다. 조(趙)나라에 인상여 (藺相如)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담력과 책략이 뛰어나고 식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도량이 아주 큰 사람이였다.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이 화씨(和氏)의 벽(璧) 이라는 진귀한 옥(玉)을 가지고 있는 것을 조나라 서쪽의 강국인 진나라가 알아내었다. 진나라에 조 왕을 모시고 협상하려고 갔다가 진왕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제나라와 위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조나라는 황하의 제방을 터뜨려 상대 군사들을 수장해 버리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