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사비우(乞四比羽, ? ~ 698)는 7세기에 대조영과 함께 발해 건국을 주도했던 말갈 부족의 족장 걸사지추의 말갈족 출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구려의 유장(遺將) 대조영은 말갈족의 지도자 걸사비우(乞四比羽)와 더불어 무리를 이끌고 영주(營州)에서 북동으로 빠져나와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말갈족의 후신이 여진족이 된다. 말갈족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가 바로 대조영의 발해건국을 도왔던 걸사비우다. 설인귀(薛仁貴)가 거느린 당(唐)의 기병 2만여명은 보무도 당당하게 통정진(通定鎭)으로 들어갔다. 과연 걸사비우(乞四比羽)의 염탐 보고는 정확했다. 성 밖에는 고구려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성 안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무후는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으로, 걸걸중상을 진국공(震國公)으로 책봉하였는데, 대장금은 대조영 후손으로 남원태씨이다. 발해 걸사비우는 허국 (許國) 태인허씨 땅 장금산에 세웠다. 고려 최이 정권 대씨 부인과 서자 최항의 다툼에 숙청 대(大)를 태(太)로 고쳤다. 대조영의 말에 말갈족의 우두머리 걸사비우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은 곧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분류:발해
걸사비우(乞四比羽, ? ~ 698)는 7세기에 대조영과 함께 발해 건국을 주도했던 말갈 부족의 족장 걸사지추의 말갈족 출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구려의 유장(遺將) 대조영은 말갈족의 지도자 걸사비우(乞四比羽)와 더불어 무리를 이끌고 영주(營州)에서 북동으로 빠져나와 당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말갈족의 후신이 여진족이 된다. 말갈족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가 바로 대조영의 발해건국을 도왔던 걸사비우다. 설인귀(薛仁貴)가 거느린 당(唐)의 기병 2만여명은 보무도 당당하게 통정진(通定鎭)으로 들어갔다. 과연 걸사비우(乞四比羽)의 염탐 보고는 정확했다. 성 밖에는 고구려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성 안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대걸걸중상은 고구려인을 이끄는 수장으로, 걸사비우는 말갈인을 이끄는 수장으로 둘 다 당나라의 맞서 싸운 사람들이다. 서로 뜻이 맞은 것이다. 처음으로 전투을 개시한 부대는 걸사비우가 이끄는 말갈인 부대였는데, 병력의 엄청난 차이로 부대는 괴멸되고 추장인 걸사비우는 전사한다. 역사대로라면 걸사비우는 이해고에게 죽어야 하는데 대조영 사극 드라마에서는 걸사비우 끝까지 살아남는다. 걸사비우가 도착해 금란을 구해주는 틈을 타서 이해고는 다시 도망 길에 올랐다. 이해고는 바위 위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무후는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으로, 걸걸중상을 진국공(震國公)으로 책봉하였는데, 대장금은 대조영 후손으로 남원태씨이다. 발해 걸사비우는 허국 (許國) 태인허씨 땅 장금산에 세웠다. 고려 최이 정권 대씨 부인과 서자 최항의 다툼에 숙청 대(大)를 태(太)로 고쳤다. 대조영의 말에 말갈족의 우두머리 걸사비우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은 곧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분류: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