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려하(句麗河, 구하(狗河)는 요하였다. 위만이 패수를 건너 요동군 험독성에 도망해 들어왔다. 이 패수는 낙랑군 패수가 아니다. 이 패수는 수중현의 구하, 별칭 구려하, 또는 명수(明水)가 된다. 번한왕 기준은 위만(衛滿)에게 상하운장을 떼어주고 한나라를 막도록 하였다. 기원전 126년경에 위만 조선이 한나라로부터 요하(遼河) 동쪽 지방을 빼앗자 다시 위만 조선을 공격하여 기원전 115년에 구려하(句麗河 : 요하) 동쪽 지방을 모두 빼앗았으나 위만조선은 멸망할 때까지 요동반도를 다시 수복하지 못하여 구려하가 위만조선의 동변이 되었다. 북부여 고우루 단군이 정예군 5,000명을 이끌고 위씨조선이 점거한 해성을 격파하고 살수(薩水)에 이르르니 구려하 동쪽이 모두 항복하였다. 고추모의 선조나라 고리국은 구려하(九黎河) 건너 서안평을 가리킨다. 기원전 108년경의 구려하와 서안평이 어디인지를 알면 옛 고리국 즉 구려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영주는 구려하 서쪽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 사이에 펼쳐진 넓고 황량한 땅으로 주로 거란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구려하(句麗河, 구하(狗河)는 요하였다. 위만이 패수를 건너 요동군 험독성에 도망해 들어왔다. 이 패수는 낙랑군 패수가 아니다. 이 패수는 수중현의 구하, 별칭 구려하, 또는 명수(明水)가 된다. 번한왕 기준은 위만(衛滿)에게 상하운장을 떼어주고 한나라를 막도록 하였다. 기원전 126년경에 위만 조선이 한나라로부터 요하(遼河) 동쪽 지방을 빼앗자 다시 위만 조선을 공격하여 기원전 115년에 구려하(句麗河 : 요하) 동쪽 지방을 모두 빼앗았으나 위만조선은 멸망할 때까지 요동반도를 다시 수복하지 못하여 구려하가 위만조선의 동변이 되었다. 북부여 고우루 단군이 정예군 5,000명을 이끌고 위씨조선이 점거한 해성을 격파하고 살수(薩水)에 이르르니 구려하 동쪽이 모두 항복하였다. 고추모의 선조나라 고리국은 구려하(九黎河) 건너 서안평을 가리킨다. 기원전 108년경의 구려하와 서안평이 어디인지를 알면 옛 고리국 즉 구려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영주는 구려하 서쪽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 사이에 펼쳐진 넓고 황량한 땅으로 주로 거란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