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2세 [Rudolf II, 1552. 7. 18 합스부르트 영지(지금의 오스트리아) 빈~ 1612. 1. 20 보헤미아(지금의 체크 공화국) 프라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1576~1612 재위)이다. 576년, 24세의 젊은 나이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올라 1612년까지 무려 36년간 황제로 근무했던 그는 말년에 병약하고 인심을 잃어 종교적 충돌을 막지 못했으며 이것이 결국 30년전쟁(1618~48)으로 이어졌다. 황제 카를 5세의 딸 마리아와 황제 막시밀리안 2세 사이에서 살아남은 아들 중 맏아들로 1572년 헝가리 왕(루돌프), 1575년 보헤미아 왕(루돌프 2세)이 되었다. 1576년 10월 12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 대공(루돌프 5세) 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심한 우울증 발작 때문에 곧 프라하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하면서 예술과 과학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첫 치세 20여 년 동안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파당들의 싸움으로 제국의 정부는 기능이 마비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루돌프는 막시밀리안 2세의 종교관용정책을 뒤엎고 프로테스탄트 신분의회(귀족과 도시 대표들)의 정치특권을 제한하려 했다. 1.
* 넘겨주기
루돌프 2세 [Rudolf II, 1552. 7. 18 합스부르트 영지(지금의 오스트리아) 빈~ 1612. 1. 20 보헤미아(지금의 체크 공화국) 프라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1576~1612 재위)이다. 576년, 24세의 젊은 나이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올라 1612년까지 무려 36년간 황제로 근무했던 그는 말년에 병약하고 인심을 잃어 종교적 충돌을 막지 못했으며 이것이 결국 30년전쟁(1618~48)으로 이어졌다. 황제 카를 5세의 딸 마리아와 황제 막시밀리안 2세 사이에서 살아남은 아들 중 맏아들로 1572년 헝가리 왕(루돌프), 1575년 보헤미아 왕(루돌프 2세)이 되었다. 1576년 10월 12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 대공(루돌프 5세) 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심한 우울증 발작 때문에 곧 프라하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하면서 예술과 과학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첫 치세 20여 년 동안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파당들의 싸움으로 제국의 정부는 기능이 마비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루돌프는 막시밀리안 2세의 종교관용정책을 뒤엎고 프로테스탄트 신분의회(귀족과 도시 대표들)의 정치특권을 제한하려 했다. 1598년 이후 황제의 정신상태는 더욱 안정을 잃었으며, 그의 정치적 무능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온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제후들은 1605년 헝가리 국사를 그의 동생 마티아스에게 맡기도록 강요했고, 결국 1606년 마티아스를 자기들의 지도자이며 루돌프를 계승할 후보자로 인정했다. 2년 뒤 루돌프는 마티아스에게 헝가리·오스트리아·모라비아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고 보헤미아의 계승권도 약속했다. 그러나 1611년 레오폴트 대공이 지휘하는 황제군이 루돌프의 지원을 받으며 보헤미아를 약탈하자 보헤미아 신분의회는 마티아스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티아스의 군대는 루돌프를 사실상 프라하에 가두어놓았다. 그해 5월 루돌프는 마티아스에게 보헤미아를 넘겨주고 풀려났다. 그는 마티아스가 로마 왕(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후계자로 지명받은 사람)에 선출되지 못하게 손을 썼지만 마티아스는 그가 죽은 뒤 5개월 만에 황제가 되었다. 1.
* 넘겨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