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 (楊貴妃, (병)Yang Guifei (웨)Yang Kueifei. 719~756)는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 : 712~756 재위)의 귀비(貴妃)였다.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였다. 당대포주 영락인(719~756, 지금의 섬서 화음현) 출신이였다. 음률의 조예가 깊고 가무에 능하였다. 당 현종의 총비가 되었는데 원래는 현종의 비가 아니라 당 현종의 왕자 제 18 대 수왕(壽王)의 비로 예정된 며느리를 당 현종이 가로 채 후궁으로 삼았다. 현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당대(唐代)의 미녀 양귀비는 당명황(唐明皇)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현종이 매혹적이고도 아름다운 그녀에게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자 잇달아 반란이 일어났다. 궁중의 법도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는 없었으므로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의 행세를 하였다. 양귀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양귀비는 중국 미인의 대명사로 통하며 중국역사속의 4대미인중의 하나이다. 양귀비가 유명해진 것은 물론 그녀의 미모 때문이다.
양귀비 (楊貴妃, (병)Yang Guifei (웨)Yang Kueifei. 719~756)는 중국 당(唐)나라 현종(玄宗 : 712~756 재위)의 귀비(貴妃)였다.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였다. 당대포주 영락인(719~756, 지금의 섬서 화음현) 출신이였다. 음률의 조예가 깊고 가무에 능하였다. 당 현종의 총비가 되었는데 원래는 현종의 비가 아니라 당 현종의 왕자 제 18 대 수왕(壽王)의 비로 예정된 며느리를 당 현종이 가로 채 후궁으로 삼았다. 현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당대(唐代)의 미녀 양귀비는 당명황(唐明皇)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현종이 매혹적이고도 아름다운 그녀에게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자 잇달아 반란이 일어났다. 궁중의 법도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는 없었으므로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의 행세를 하였다. 양귀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양귀비는 중국 미인의 대명사로 통하며 중국역사속의 4대미인중의 하나이다. 양귀비가 유명해진 것은 물론 그녀의 미모 때문이다. 흔히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수화(羞花,꽃이 부끄러워 한다)' 라는 말을 쓴다. 현종과 만나기 이전 ,어느 하루 양귀비가 정원에서 꽃구경을 하다가 무성하게 꽃이 핀 모란과 월계화 등을 본다. 양귀비가 꽃을 쓰다듬으며 건드렸는데 꽃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부끄러위 꽃잎을 말아 올려서 또는 꽃이 그 아름다움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는 도도함이 그렇게 불렸다. 안록산은 현종의 양해를 얻어 양귀비의 양자가 되었고 이를 이유로 천자와 환관만이 출입이 허가되는 궁에 출입이 허거되었다. 안록산의 난에서 양귀비는 액살형에 처해졌다. 양귀비는 중국의 대시인 이백(李白)과 백거이(白居易) 등이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가히 세계적이어서 중국은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분류:당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