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욱(1953년 5월 9일~2007년 4월 15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사회운동가이다. 1953년 경기도 안성에서 9남매중 5번째로 태어났다. 1991년에 택시회사인 한독운수에 입사하였다. 1994년 봉천동에 거주하고 있던 허세욱 씨는 강제철거에 맞서면서 사회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95년에 관악주민연대에 가입했고 1998년에 참여연대에 가입했으며 2000년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7년에는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 민주택시연맹 한독분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넉넉잖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가입한 단체의 회비를 꼬박꼬박 냈으며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희생자 추모집회 등에 참가하는 등 현장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또한 주변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한미 FTA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허세욱 씨는 결국 협상이 타결 직전에 이르러 가자 2007년 4월 1일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 부근에서 분신하였다. 그는 응급차에 실려가기까지 "한미 FTA 폐기하라!"라고 외쳤으며 이 때문에 기도화상이 더욱 심해졌다. 이후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허세욱 씨는 4월 15일 숨졌다.
허세욱(1953년 5월 9일~2007년 4월 15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사회운동가이다. 1953년 경기도 안성에서 9남매중 5번째로 태어났다. 1991년에 택시회사인 한독운수에 입사하였다. 1994년 봉천동에 거주하고 있던 허세욱 씨는 강제철거에 맞서면서 사회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95년에 관악주민연대에 가입했고 1998년에 참여연대에 가입했으며 2000년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7년에는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 민주택시연맹 한독분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넉넉잖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가입한 단체의 회비를 꼬박꼬박 냈으며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희생자 추모집회 등에 참가하는 등 현장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또한 주변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한미 FTA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허세욱 씨는 결국 협상이 타결 직전에 이르러 가자 2007년 4월 1일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 부근에서 분신하였다. 그는 응급차에 실려가기까지 "한미 FTA 폐기하라!"라고 외쳤으며 이 때문에 기도화상이 더욱 심해졌다. 이후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허세욱 씨는 4월 15일 숨졌다. 유해는 시민사회단체와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족장으로 화장되어 무연고자 등의 유골과 함께 뒤섞여 합사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인의 동료들이 찾아낸 유골 일부분과 고인의 유품을 가지고 4월 18일장례식을 거행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