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안더는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코린토스의 두번째 독재관이였다. 그는 첫 독재관 키프셀루스의 아들이였다. 페리안더는 기원전 627년 그의 아버지를 계승하였다. 그는 코린토스 항구를 승급시켰다. 그리고 코린토스릐 이스트무스를 가로질러서 ramp를 건설하여 배들이 펠러폰네수스를 도는 해로를 피하는 디올코스를 가로질러스 끌로갈수 있게 하였다. 디올코스에서 번 돈으로 페리안더는 코린토스의 세금을 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리안더는 후에 전형적인 독재관으로 고려되었다. 헤로도투스는 밀레투스의 독재관 트라시불루스에게서 그의 야만성(savagery)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페리안더가 권력을 뺏을 만한 어떠한 이도 제거하도록 교육하였다. 그의 활동중에는 코르키라에서 어린 소년들을 리디아에 castrated되게 보내었다.(그들은 탈출하였고 사미아 인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아내 멜리사의 살해도 있었다. 그들의 아들 리코프론은 그의 아버지가 살인자임을 알았고 그리하여 페리안더는 그를 코린토스에서 추방하였다. 그리고 그글 피신시킬 하인들을 금지하였다. 후에 페리안더는 리코프론과 화해를 시도하였지만 페리안더가 양위하지 않으면 리코프론은 돌아오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코르키라의 주민들은 리코프론을 죽여 페리안더가 오는 것을 방지하였다. 페리안더의 조카 프사메티쿠스는 그를 계승하여 코린토스의 독재관이 되었지만 프사메티쿠스의 치세는 단지 3년간 지속되었다. 그는 킾셀리드 왕조의 마지막이였다. 페리안더는 대부분의 저자들에 의해 그리스의 현자로 목록화되었다.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페리안더는 또한 음악 경연대회를 개최하였는
페리안더는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코린토스의 두번째 독재관이였다. 그는 첫 독재관 키프셀루스의 아들이였다. 페리안더는 기원전 627년 그의 아버지를 계승하였다. 그는 코린토스 항구를 승급시켰다. 그리고 코린토스릐 이스트무스를 가로질러서 ramp를 건설하여 배들이 펠러폰네수스를 도는 해로를 피하는 디올코스를 가로질러스 끌로갈수 있게 하였다. 디올코스에서 번 돈으로 페리안더는 코린토스의 세금을 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리안더는 후에 전형적인 독재관으로 고려되었다. 헤로도투스는 밀레투스의 독재관 트라시불루스에게서 그의 야만성(savagery)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페리안더가 권력을 뺏을 만한 어떠한 이도 제거하도록 교육하였다. 그의 활동중에는 코르키라에서 어린 소년들을 리디아에 castrated되게 보내었다.(그들은 탈출하였고 사미아 인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아내 멜리사의 살해도 있었다. 그들의 아들 리코프론은 그의 아버지가 살인자임을 알았고 그리하여 페리안더는 그를 코린토스에서 추방하였다. 그리고 그글 피신시킬 하인들을 금지하였다. 후에 페리안더는 리코프론과 화해를 시도하였지만 페리안더가 양위하지 않으면 리코프론은 돌아오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코르키라의 주민들은 리코프론을 죽여 페리안더가 오는 것을 방지하였다. 페리안더의 조카 프사메티쿠스는 그를 계승하여 코린토스의 독재관이 되었지만 프사메티쿠스의 치세는 단지 3년간 지속되었다. 그는 킾셀리드 왕조의 마지막이였다. 페리안더는 대부분의 저자들에 의해 그리스의 현자로 목록화되었다.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페리안더는 또한 음악 경연대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대회에서 시인 아리온이 우승하였다. 페리안더는 상기의 디올코스 즉 말로끄는 기차작업을 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