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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산(稷山)은 마한 목지국의 수도였다. 천안시 성환읍에 위치한 성산이라고 별로 높지 않은 야산에는 그곳이 예전 마한 목지국의 수도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성환 바로 옆 직산읍에는 위례산성이 있다. 지형적 요인을 고려할 때 팽성이 있는 평택지방은 수원의 모수국과 직산의 목지국의 영역 안에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한 목지국은 처음에 성환, 직산, 천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나, 고조선 멸망후 부여세력(부여,고구려,백제) 및 낙랑국에 밀려 그 중심 세력이 평양에서 한강 이남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자 조선이 멸망한 후 준왕이 장성 강제노역을 피해 마무리를 이끌고 남하했던 곳이 아산만 유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마한을 이끌었던 목지국이 직산에 있었던 것도 아산만 유역의 수로교통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많게는 1만호 작게는 몇천호의 작은 소국이 한강을 중심으로 한 백제국과 충남직산에 있었던 목지국을 중심으로한 세력으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목지국의 왕을 진왕이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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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산(稷山)은 마한 목지국의 수도였다. 천안시 성환읍에 위치한 성산이라고 별로 높지 않은 야산에는 그곳이 예전 마한 목지국의 수도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성환 바로 옆 직산읍에는 위례산성이 있다. 지형적 요인을 고려할 때 팽성이 있는 평택지방은 수원의 모수국과 직산의 목지국의 영역 안에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한 목지국은 처음에 성환, 직산, 천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나, 고조선 멸망후 부여세력(부여,고구려,백제) 및 낙랑국에 밀려 그 중심 세력이 평양에서 한강 이남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자 조선이 멸망한 후 준왕이 장성 강제노역을 피해 마무리를 이끌고 남하했던 곳이 아산만 유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마한을 이끌었던 목지국이 직산에 있었던 것도 아산만 유역의 수로교통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많게는 1만호 작게는 몇천호의 작은 소국이 한강을 중심으로 한 백제국과 충남직산에 있었던 목지국을 중심으로한 세력으로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목지국의 왕을 진왕이라 칭하였다. 백제는 부여족 계통의 한 집단인 온조 집단에 의해 현재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건국 초기에는 직산의 목지국 중심의 마한 연맹체의 한 구성원이었다. 백제는 한성(漢城)을 쌓은 내친김에 온조는 웅천(지금의 공주)에 목책을 세웠다. 그 후 백제는 마한의 여러 국들을 병합하면서 대외관계에서는 직산에 자리잡은 목지국(目支國)의 세력을 압도하여 이전의 부용관계(附庸關係)를 청산하고 한강유역의 실질적인 영도세력의 위치를 확립했으며, 낙랑군, 대방군을 공격했다. 백제의 성장과 지배 영역의 확대에 따라 월지국(익산)이 그 중심지역으로 토착세력과 함께 마한을 구성하게 되었다. 백제의 성장과 지배 영역의 확대에 따라 남쪽으로 옮겨 익산 지역을 거쳐 마지막에 나주 부근(오늘날의 대안리, 덕산리, 신촌리, 복암리)으로 이동하였다. 월지국은 기탁이 태어났던 고향이었고, 마한은 소국연맹체제 였었고, 월지국이 바로 목지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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