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영(孺子婴, 5년경? ~ 25년)은 중국 전한의 15대 황제(재위 6년 - 8년)이며 선제의 4대손이었다. 이름은 유영(劉婴). 정확한 생년은 미상이다. 선제의 서자인 초효왕 유효(劉囂)의 증손이었다. 유효의 서자인 광척후(廣戚侯) 유훈(劉勳)의 손자이자 광척후(廣戚侯) 유현(劉顯)의 아들이다. 생후 얼마 뒤에 왕망에 의해 종숙부 전한 평제의 태자로 옹립된 뒤 평제가 후사없이 죽자 제위를 계승했다. 서기 6년 왕망은 그를 추대하고 자신은 섭정, 섭황제라 칭했다가 2년만에 서기 8년 11월 왕망은 선양의 형식으로 제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를 세웠다. 그뒤 그는 안한공(安漢公)에 봉작됐다가 다시 정안공(定安公)으로 개봉되었다. 25년 한나라의 부활을 명분으로 거병한 먼 친족 경시제 유현(劉玄)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는 섭정이었다가 찬탈한 왕망에 의해 강제로 왕망의 손녀 왕씨와 결혼했으나 그의 사후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하다.
유자영(孺子婴, 5년경? ~ 25년)은 중국 전한의 15대 황제(재위 6년 - 8년)이며 선제의 4대손이었다. 이름은 유영(劉婴). 정확한 생년은 미상이다. 선제의 서자인 초효왕 유효(劉囂)의 증손이었다. 유효의 서자인 광척후(廣戚侯) 유훈(劉勳)의 손자이자 광척후(廣戚侯) 유현(劉顯)의 아들이다. 생후 얼마 뒤에 왕망에 의해 종숙부 전한 평제의 태자로 옹립된 뒤 평제가 후사없이 죽자 제위를 계승했다. 서기 6년 왕망은 그를 추대하고 자신은 섭정, 섭황제라 칭했다가 2년만에 서기 8년 11월 왕망은 선양의 형식으로 제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를 세웠다. 그뒤 그는 안한공(安漢公)에 봉작됐다가 다시 정안공(定安公)으로 개봉되었다. 25년 한나라의 부활을 명분으로 거병한 먼 친족 경시제 유현(劉玄)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는 섭정이었다가 찬탈한 왕망에 의해 강제로 왕망의 손녀 왕씨와 결혼했으나 그의 사후 실종되어 행방이 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