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또는 상박은 상나라 초기의 수도로 박이라고도 불렸다. 상나라 시조 탕왕은 하나라의 걸왕을 몰아내고 천자위에 오르는데 성공하여 은나라가 성립되었다. 이 때 수도를 상이란 곳으로 했기 때문에 상나라라고 한다. 하나라 걸왕은 이윤의 간언에 '무슨 참견이냐'하며 들은 척도 아니했다. 그 후로 이윤은 하나라를 버리고 당시 은나라의 수도였던 박(臺)으로 도망쳐 마침내 탕왕(湯王)을 섬겨 은나라 창업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기원전 1766년(을미년) 은나라 시조 탕왕 즉위하고 수도를 "박"으로 삼았다. 번한 소전이 묵태를 파견하여 은탕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탕왕이 박에 도읍을 정한 이래 19대 반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5차례나 도읍을 옮겼다. 탕임금의 6세손(世孫) 중정(仲丁)이 효읍으로 천도하며 또 중정의 아우 하단갑(河亶甲)이 상읍(相)으로 천도하고 하단갑의 아들 조을(祖乙)이 형읍(邢)과 경(耿)으로 천도하였다.
상 또는 상박은 상나라 초기의 수도로 박이라고도 불렸다. 상나라 시조 탕왕은 하나라의 걸왕을 몰아내고 천자위에 오르는데 성공하여 은나라가 성립되었다. 이 때 수도를 상이란 곳으로 했기 때문에 상나라라고 한다. 하나라 걸왕은 이윤의 간언에 '무슨 참견이냐'하며 들은 척도 아니했다. 그 후로 이윤은 하나라를 버리고 당시 은나라의 수도였던 박(臺)으로 도망쳐 마침내 탕왕(湯王)을 섬겨 은나라 창업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기원전 1766년(을미년) 은나라 시조 탕왕 즉위하고 수도를 "박"으로 삼았다. 번한 소전이 묵태를 파견하여 은탕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탕왕이 박에 도읍을 정한 이래 19대 반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5차례나 도읍을 옮겼다. 탕임금의 6세손(世孫) 중정(仲丁)이 효읍으로 천도하며 또 중정의 아우 하단갑(河亶甲)이 상읍(相)으로 천도하고 하단갑의 아들 조을(祖乙)이 형읍(邢)과 경(耿)으로 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