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읍성은 의령군 향토문화유적지로 지정돼 일부분이 남아있다. 의령읍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직전인 1589년 당시 의령현감인 이 엽이 축성한 것으로 〈의춘지〉에 기록이 남아 있다. 토석을 섞어 만든 성으로 평지에 있는 고을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싸 산 위까지 이은 반 산성 형식의 성곽이다. 성벽 높이는 약 2m로 처음에는 곳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성곽의 길이도 상당히 줄었다. 현재는 의령읍 서동 주택지에서 시작하여 뒷산 중턱 의령 남씨 남군보 모역 인근 600여m 가량까지 석축 부분이 남아 있으며 인근 주택지 가운데 읍성의 흔적들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군은 이 읍성을 '향토문화유적지'로 선정했으나 이를 알리는 비석만 달랑 세운 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어 토석으로 만든 읍성이 비와 바람에 허물어져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고 있다.
의령 읍성은 의령군 향토문화유적지로 지정돼 일부분이 남아있다. 의령읍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직전인 1589년 당시 의령현감인 이 엽이 축성한 것으로 〈의춘지〉에 기록이 남아 있다. 토석을 섞어 만든 성으로 평지에 있는 고을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싸 산 위까지 이은 반 산성 형식의 성곽이다. 성벽 높이는 약 2m로 처음에는 곳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성곽의 길이도 상당히 줄었다. 현재는 의령읍 서동 주택지에서 시작하여 뒷산 중턱 의령 남씨 남군보 모역 인근 600여m 가량까지 석축 부분이 남아 있으며 인근 주택지 가운데 읍성의 흔적들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군은 이 읍성을 '향토문화유적지'로 선정했으나 이를 알리는 비석만 달랑 세운 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어 토석으로 만든 읍성이 비와 바람에 허물어져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고 있다. 벽화 산성은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하리 벽화산(521m) 줄기의 최고봉과 가운데 봉우리에 쌓은 2개의 산성으로, 상벽화성과 하벽화성으로 불리운다. 가야 때 쌓은 성으로 추정되며, 선조 22년(1589) 임진왜란 직전 의령 읍성을 쌓으면서 전란을 대비하여 부분적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고쳐 쌓은 산성으로, 의병을 거느리고 수천명의 왜적을 무찔렀던 전승지로 유명하다. 그 뒤 고종 13년(1876)에 크게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래 이 산성은 벽화산 아래까지 연장되어 있었던 듯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주변 마을에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과 유물, 삼국시대의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분류:읍성 분류:의령의 산성 분류:의산성 분류:영산성 분류:의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