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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왕(吳王) 요(僚) 5년, 초(楚)에서 오자서( 伍子胥) 가 도망쳐와 오왕 요와 공자광(公子光)을 뵈었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五奢)는 초의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2였다. 평왕 2년, 마찬가지로 소부(小傅)인 비무기(費無忌)가 진(秦)에서 태자비로 데리고 온 여자를 평왕(平王)에게 권하고, 태자에게서 떠나 왕에게 아첨하여 총임을 얻었으나, 태자의 보복이 두려워 참언했다. 그래서 왕은 태자를 초의 동북 국경인 성부(城父)의 수비관으로 보냈다. 비무기는 태자를 변경 지방으로 쫓아 보낸 다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자 태자가 제후와 손을 잡고 왕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왕은 그 말을 믿고 태부인 오사를 불러 엄하게 문책했으나, 오사는 도리어 왕이 참적(讒賊)의 말을 듣고 골육인 태자를 가볍게 보는 것을 간힐했다. 그 때문에 오사는 유폐당하고, 태자는 송(宋)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비무기는 오사의 두 아들, 오상과 오자서의 보복이 두려워 태자의 음모는 이 두 아들이 권유했다고 다시 왕에게 참언했다. 왕은 두 아들을 붙잡기 위해 알렸다. "오면 네 아비를 용서하고, 오지 않으면 죽이겠다." 분류:오나라의 왕 분류:이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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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오왕(吳王) 요(僚) 5년, 초(楚)에서 오자서( 伍子胥) 가 도망쳐와 오왕 요와 공자광(公子光)을 뵈었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五奢)는 초의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2였다. 평왕 2년, 마찬가지로 소부(小傅)인 비무기(費無忌)가 진(秦)에서 태자비로 데리고 온 여자를 평왕(平王)에게 권하고, 태자에게서 떠나 왕에게 아첨하여 총임을 얻었으나, 태자의 보복이 두려워 참언했다. 그래서 왕은 태자를 초의 동북 국경인 성부(城父)의 수비관으로 보냈다. 비무기는 태자를 변경 지방으로 쫓아 보낸 다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자 태자가 제후와 손을 잡고 왕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왕은 그 말을 믿고 태부인 오사를 불러 엄하게 문책했으나, 오사는 도리어 왕이 참적(讒賊)의 말을 듣고 골육인 태자를 가볍게 보는 것을 간힐했다. 그 때문에 오사는 유폐당하고, 태자는 송(宋)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비무기는 오사의 두 아들, 오상과 오자서의 보복이 두려워 태자의 음모는 이 두 아들이 권유했다고 다시 왕에게 참언했다. 왕은 두 아들을 붙잡기 위해 알렸다. "오면 네 아비를 용서하고, 오지 않으면 죽이겠다." 그래서 형 오상은 아버지와 함께 죽고자 잡히고 오자서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도망쳤다. 송으로 도망쳐간 오자서는 태자 건과 함께 오(吳)로 갔다. 오왕 요와 공자광을 뵌 오자서는 공자광이 왕위를 은근히 탐내며 자객을 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전제(專諸)라는 자객을 발견해서 이를 공자광에게 천거하고 자신은 농사일을 하면서 공자광이 목적을 달성하기만 기다렸다. 오왕 요 12년(기원전 512년), 초평왕이 죽고 비무기가 평왕에게 권한 진녀(秦女)의 몸에서 출생한 진(軫)이 왕위에 올랐다. 당연히 비무기는 전횡을 일삼았는데 1년도 못되어 내분이 일어나 살해당했다. 오자서는 그렇게 하여 노리던 원두 두 사람을 계속 잃었으나 초로 쳐들어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겠다는 결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편 비무기가 살해되던 해, 오왕 요는 초의 내분을 틈타 단숨에 이를 치고자 대군을 초로 진격시켰다. 그 틈에 공자광은 전제(專諸)를 시켜 오왕 요를 암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오왕 합려(闔廬)이다. 합려는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으로 부차의 아버지다. 오자서와 함께 자객 전저의 힘을 빌려 오왕 요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오자서는 손무(孫武)와 함께 합려를 도와 여러 차례 초로 진격했는데, 마침내 합려왕 9년(기원전 506년), 초의 수도인 영(郢)을 함락시켰다.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으려고 소왕(昭王)을 찾았으나 소왕은 이미 운(鄖)으로 도망친 뒤라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평왕의 무덤을 파고 그 시체에 3백 대의 매질을 하여 원한을 풀었다. 오자서와 친교가 있던 신포서(申包胥)는 이때 산중에 피해 있었으나 사람을 통해 오자서의 보복이 너무나도 심한 것을 책망하고 그 행위를 천륜에 어긋난 일이라고 전하였다. 그에 대하여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해는 지고 길은 멀다. 그래서 나는 도행(倒行)해서 이것을 역시(逆施)할 뿐이다." 즉 자기는 나이들고 늙었으나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이치를 따라서 행할 겨를이 없다고 한 것이다. 분류:오나라의 왕 분류:이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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