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려국(句麗國)은 구려의 조상 나라이다. 고구려의 모체가 되는 정치집단으로 구려국은 우리의 선조들이 세운 나라이다. 북쪽에 위치한 단군 조선의 제후국이 되며,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고향은 고리국인데, 이 고리국은 바로 단군 조선의 구려국(句麗國)이다. 그 나라 임금을 군(君)이라 하였다. 구려(九黎)는 번한의 소속이 된다. 서토에 있는 구려(九黎)의 역사를 약설하면, 부루태자가 지금의 회계산인 도산에서 회의를 할 때 소집한 구려(九黎)는 오월(吳越) 지방에 도읍하였고, 그 후예가 산월(山越), 좌월(左越) 등이 있다. 서기전 108년경의 구려하와 서안평이 어디인지를 알면 옛 고리국 즉 구려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단군조선 시대 구려국은 원래의 고죽국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때의 산융은 위치상으로 보면 고죽국과 낙랑의 북쪽에 위치한 구려국이 되는 것으로 된다. 북경의 서쪽이 되는 서화 땅은 은나라 태사 기자의 망명지가 되며, 기자의 후손은 수유라고도 불린다.
구려국(句麗國)은 구려의 조상 나라이다. 고구려의 모체가 되는 정치집단으로 구려국은 우리의 선조들이 세운 나라이다. 북쪽에 위치한 단군 조선의 제후국이 되며,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고향은 고리국인데, 이 고리국은 바로 단군 조선의 구려국(句麗國)이다. 그 나라 임금을 군(君)이라 하였다. 구려(九黎)는 번한의 소속이 된다. 서토에 있는 구려(九黎)의 역사를 약설하면, 부루태자가 지금의 회계산인 도산에서 회의를 할 때 소집한 구려(九黎)는 오월(吳越) 지방에 도읍하였고, 그 후예가 산월(山越), 좌월(左越) 등이 있다. 서기전 108년경의 구려하와 서안평이 어디인지를 알면 옛 고리국 즉 구려국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단군조선 시대 구려국은 원래의 고죽국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때의 산융은 위치상으로 보면 고죽국과 낙랑의 북쪽에 위치한 구려국이 되는 것으로 된다. 북경의 서쪽이 되는 서화 땅은 은나라 태사 기자의 망명지가 되며, 기자의 후손은 수유라고도 불린다. 단군 도해의 기록을 보면 “부여후가 알유의 난을 만났다. 웅가가 구려, 진번후와 힘을 합쳐 평정했다.”고 했으니 구려국이 제11세 단군까지 계속 존재한 증거가 된다. 고조선 멸망이후 구려국 (句麗國)이 고구려 건국 이전까지 약 1천년간 지속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기원전 37년이라는 고구려 건국 연대를 해모수의 건국년대로 끌어 올리고 있다. 동명국의 수도가 졸본 부여이고 고주몽은 고두막한의 손녀 사위로서 졸본 부여의 단군에 즉위하였지만 물러나 다시 구려국을 세워 눌현(訥見; 今 西豊縣)에 천도한 것이 추가된다. 졸본의 왕위 세습이 달라지면서 자연히 이름도 고씨 구려국이란 뜻의 고구려가 된 것이다. 백제의 왕인 온조 대왕은 부여씨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