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라국(安羅國)은 안야국이다. 금관가야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후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안라국이 중심이 되어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일본의 다파라국(합천)과 안라국(安羅國)은 이웃하고 살며 같은 동족의 백성들이다. 옛 웅습성(熊襲城)이 지금의 규슈(九州)이며 웅본성(熊本城,구마모또시로)이라 한다. 왜(倭)나라는 회계군(會稽郡)의 동쪽이다. 부여의 협보는 구마모또에 진출하여 다라국(多羅國)을 세우고 휴우가(日何)의 안라국과 연합하여 사마대국(邪馬臺國)을 세운 인물이다. 561년(진흥왕 22년)에는 남쪽의 안라국을 흡수하고 신라의 영토임을 나타내는 창녕비를 세웠다. 안라국만의 독특한 무덤양식으로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안라국(아라가야) 만의 독특한 무덤축조기법이 유물을 안치하는 공간으로 알고 있던 감실(龕室)을 들보 시설로 재해석한 결과다. 여러 철기 부장품과 함께 국내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의 말갑옷이 수습되어 5세기초 대고구려전을 수행했던 안라국 왕자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비롯 고구려군에 패퇴했다고는 하나 가야 연합군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분류:변한 분류:아라가야
안라국(安羅國)은 안야국이다. 금관가야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후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안라국이 중심이 되어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일본의 다파라국(합천)과 안라국(安羅國)은 이웃하고 살며 같은 동족의 백성들이다. 옛 웅습성(熊襲城)이 지금의 규슈(九州)이며 웅본성(熊本城,구마모또시로)이라 한다. 왜(倭)나라는 회계군(會稽郡)의 동쪽이다. 부여의 협보는 구마모또에 진출하여 다라국(多羅國)을 세우고 휴우가(日何)의 안라국과 연합하여 사마대국(邪馬臺國)을 세운 인물이다. 경남 함안은 옛 안라국(安羅國)의 터전으로 옛 무덤의 거대한 물결이 함안 말산리 / 도항리 고분군에 있다. 일본식민학자들이 고증한 천황의 속국이란 안라국은 지금의 일본 큐슈(구주)에 안라국이 있었다. 일본서기 흠명기 기록(흠명5년)을 인용하여 안라국을 '아라가야'와 동일 시 하였다. 식민학자들이 이룩해 놓은 것을 추종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는 이미 아라가야는 신라에게 멸망되고 없어졌다. 왜 왕권과 안라와의 관계는 종속적 동맹 관계에서 진일보한 종속 형태였으며, 6세기에 30여년 동안 백제와 안라(安羅)는 왜국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일본'이란 명칭도 '부'(府)라는 제도도 없던 흠명 천황(欽明天皇) 재위 기간(539~571)에 아라가야(안라국·함안)에 있던 가야와 왜의 외교·무역관리 기관에 '임나일본부'라는 가상의 명칭을 자의적으로 부여하였다. 561년(진흥왕 22년)에는 남쪽의 안라국을 흡수하고 신라의 영토임을 나타내는 창녕비를 세웠다. 안라국만의 독특한 무덤양식으로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안라국(아라가야) 만의 독특한 무덤축조기법이 유물을 안치하는 공간으로 알고 있던 감실(龕室)을 들보 시설로 재해석한 결과다. 여러 철기 부장품과 함께 국내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의 말갑옷이 수습되어 5세기초 대고구려전을 수행했던 안라국 왕자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비롯 고구려군에 패퇴했다고는 하나 가야 연합군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분류:변한 분류:아라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