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 가야(金官伽倻) 구야국 혹은 본가야(本伽倻), 가락국(駕洛國)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이 시조로 되어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금관가야가 있던 김해부(金海府)는 임해군(臨海郡)으로 되어 있다.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구 김해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도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인 김해김씨의 본을 이루고 있다. 금관가야국의 국기는 오늘날 일본의 욱일승천기와 똑같았다. 일본에 욱일승천기가 생겨난 것은 금관가야의 영향이었다. 가야는 6개의 부족국가이다. 김해는 철이 풍부해서 한자 쇠금(金)을 썼다고 한다. 철이 풍부하지만 철을 다루는 기술이 중요했고 이것이 부를 상징하기도 했다. 금관가야는 이후 신라와 맞설 수 있는 대등한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나 4세기 이후 고구려의 공격으로 약화돼었다. 금관가야(1c~532) 왕계보
금관 가야(金官伽倻) 구야국 혹은 본가야(本伽倻), 가락국(駕洛國)은 김수로왕(金首露王)이 시조로 되어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금관가야가 있던 김해부(金海府)는 임해군(臨海郡)으로 되어 있다.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구 김해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도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인 김해김씨의 본을 이루고 있다. 금관가야국의 국기는 오늘날 일본의 욱일승천기와 똑같았다. 일본에 욱일승천기가 생겨난 것은 금관가야의 영향이었다. 가야는 6개의 부족국가이다. 김해는 철이 풍부해서 한자 쇠금(金)을 썼다고 한다. 철이 풍부하지만 철을 다루는 기술이 중요했고 이것이 부를 상징하기도 했다. 금관가야는 이후 신라와 맞설 수 있는 대등한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나 4세기 이후 고구려의 공격으로 약화돼었다. 가야 연맹체의 주요국으로, 2세기부터 3세기 사이까지 맹주 자리에 있었다가 이후 대가야와 아라가야에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금관가야는 6가야 중 세력이 가장 커서 다른 5국은 이 금고나가야를 맹주로 삼았다. 금관가야는 수로라는 사람이 지금의 경남 김해 땅에 세워 491년 동안 지속되었으나, 532년(신라 법흥왕 19년)에 법흥왕이 신라에 복속되었다. 금관가야가 망한것은 질지왕이 불교를 받아들인 탓이다. 그가 불교를 수용한 이후 약 40년 후에 가야는 신라의 침략으로 무너진다. 김수로왕이 만든 나라 김해 금관가야가 제10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 재위 521~532) 때에 이르러 역사에서 그 이름이 사라진다. 금관가야(1c~532) 왕계보 1.
* 태조왕 김수로(金首露,서기42년~199) 2.
* 거등왕 도왕 (휘 거 등) (서기 199~259) 3.
* 마품왕 성왕 (휘 마 품) (서기 259~291) 4.
* 거질미왕 덕왕 (휘거질미) (서기 291~346) 5.
* 이시품왕 명왕 (휘이시품) (서기 346~407) 6.
* 좌지왕 신왕 (휘 좌 지) (서기 407~421) 7.
* 취희왕 혜왕 (휘 취 희) (서기 421~451) 8.
* 질지왕 장왕 (휘 질 지) (서기 451~492) 9.
* 감지왕 숙왕 (휘 겸 지) (서기 492~521) 10.
* 구형왕 양왕 (휘 구 형) (서기 52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