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천왕봉(天王峰)은 지리산 최고봉(1915m)으로 표지석이 있는데 전면에는 "知異山天王峰"이라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중산리는 천왕봉까지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이다.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다는 천왕봉은 해발 1915m다. 천왕봉은 경상남도 산청군과 함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리산 주봉이다. 대한민국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다. 일출을 볼려면, 천왕봉에는 새벽 5시 정도까지는 도착을 해야합니다. 그러니까,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는 4시간 넘게 걸리므로, 새벽1시에 올라가야 한다. 흰 구름이 산골짜기 에 자욱하니 푸른 바다 물결은 포구를 이루었고, 흰 파도가 눈을 몰아내니 산뜻한 섬이 되어 점점이 깔린 듯하다. 돌담에 몸을 기대고 위아래를 바라보니 정신도 마음도 한가지로 막막하여 몸이 태초의 공간에 안긴 채 하늘과 땅과 더불어 흘러가는 듯 했다.' 천왕봉 성모사에서 1박을 하던 김일손은 밤중에 날이 개이자 밖으로 나와 그 감흥을 읊은 것이다. '이른 새벽 동틀 무렵 해발 1,915m의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라 보라.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바다 저멀리 동녘 하늘에 희뿌연 서기 (瑞氣)가 어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잠깐, 동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면서 휘황찬란한 오색 구름 속에서 진홍빛 거대한 태양이 눈부신 햇살을 부챗살 같이 뻗치며 불쑥 솟는다. 이 장엄한 일출의 모습에는 어떤 경탄사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망연자실(茫然自失)할 따름이다' 천왕봉 해돋이 는 지리산 10경 가운데서도 제1경이다. 이 일출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三代)에 걸쳐 적선을 헤야 된다는 속설도 있다. 아무래도 까마득히 땅을 누르고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은 천왕봉은 거대한 바윗덩어리들로 이루어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짙은 구름과 안개에 싸이고 비바람, 또는 눈보라가 몰아치기 때문에 이른 새벽 천왕봉에 올랐다고 하여 누구나 일출의 황홀경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차례나 거푸 일출을 보러 갔지만 끝내 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3km 떨어진 장터목 산장이 법계사에서 앞날 저녁에 일단 여장을 풀었다가 새벽 3시, 또는 4시에 랜턴을 밝혀 들고 정상으로 출발해야 한다. 아무리 더운 여름철에도 해 돋기 전의 천왕봉은 얼음처럼 차다. 운무가 잔뜩 싸고 있거나 강풍이라도 몰아치면 두툼한 방한복을 껴입고도 견뎌내기 어렵다. 천왕봉은 거대한 암괴(岩塊)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듯이 외로이 서 있다. 이 암괴를 옛날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뜻으로 천주(天柱)라고 불렀는지, 천왕봉 서쪽 암벽에는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천왕봉에는 지난 82년 진주의 산악인들이 두 번째로 세운 오석 표지석이 있었는데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의 '만고천왕봉천명유불명(萬古天王峰天鳴猶不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현재의 표지석은 82년 초여름 당시 경남 도지사 이규호씨와 민정당 실력자 였던 권익현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남도가 세웠다. 높이 1.5의 자연석을 옮겨 와 세운 이 표지 석의 전면은 '지리산 천왕봉1,915m'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란 글을 새겨 놓았다. 표지석을 세우는 날 기자는 우연의 일치로 천왕봉에 열렸는데 경남도내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되어 천왕봉 일대의 쓰레기 수거작업을 했고, 도지사등 일부인사는 헬기로 천왕봉에 도착했다. 그날은 마침 휴일이어서 일반 등산객들도 많이 몰려 들었는데 천왕봉 일시에 많은 인파로 뒤덮은 것으로는 아마도 최고기록을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천왕봉에선 일출을 천하 제일로 치지만 아침 운해(雲海)가 하계를 뒤덮고 있을 때의 경관 또한 선경중의 선경이다. 마을도 길도 구름바다에 잠겨 있고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만 섬처럼 떠 있는 것이다. 노고운해(老姑雲海)가 좋다지만 천왕봉에 비견될 수는 결코 없다. 智異의 천왕봉은 언제 찾아도 웅장한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천왕봉은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리의 주봉은 계절마다 준비해 둔 멋진 옷을 갈아입는 듯 을해년 정월의 풍광은 쪽빛 하늘에 수놓은 듯 피어난 영화가 마치 산호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영국의 경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거대한 바위를 예로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를 풀이해 천주라 불렀음인지 서쪽 암벽에 "천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남명선생이 일찍이 "萬古天王峰 天嗚猶不嗚"이라며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로 지리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듯 그 위용은 아직도 변함없다. 천왕봉은 반야봉과 노고단등 1백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연하선경에 울창한 원시림과 골골 마다 용솟음치듯 흐르는 물보라 등 태고의 숨결을 발아래 숨겨둔채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천왕봉은 함양 방면으로 칠선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 내며 산청 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뤄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은 세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인의 젖줄이 된다.운무에 휩싸인채 말없이 억겁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천왕봉은 흐르는 물줄기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터전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천왕정상에는 현재 82년여를 경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는데 전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란 글이 표기돼 있다.그전에는 진주 산악인들이 남명선생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이란 글귀를 새겨 표지석으로 세워 두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곳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성모상은 훼손된 채 사라졌다가 다행히 한 스님에 의해 찾겨져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천왕봉의 성모사는 1489년 이곳을 오른 김일손의 "속두류록"에 의하면 성모사는 천왕봉 정상에 한 칸 정도의 돌담벽이 있고 담안의 너와집에 성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전한다. 이 사당은 빨치산에 의해 허물어진 뒤 오늘날까지 노천암대만 남아 처량하게 수십 여성상을 보내고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성스러운 모습을 하며 인간을 자연으로 부르는 천왕봉은 나무도 제대로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바위들로 이뤄져 있으면서도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을 빚어내고 있으니 자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주고 있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가다 보면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이 샘물은 천왕샘으로 불리고 있는데 명산을 찾는 등반객들의 갈증을 한꺼번에 해소해 주기에 충분하다. 대대적인 자연보전 활동에 힘입어 천왕봉 주변의 쓰레기가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천왕샘 주변엔 가끔씩 수북히 쌓인 쓰레기가 눈에 띄고 있는 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세운 천왕샘 안내간판 뒷면에는 어지럽게 적힌 낙서들로 뒤덮여 있어 안타깝게 하고 있다. 5백년전 우리네 선인들이 대자연을 음미하여 풍류를 노래하고 호연지기를 키웠던 지리산 산행기를 한번 탐독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고 하듯 뭇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과 석양낙조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하는 일출광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더불어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이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깍아지른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멀리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험난한 길 등 두 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듯 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개천문은 법계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나타나는데 원래 좌우로 두개의 바위기둥이 서 있어 위용을 자랑했는데 한족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해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늦은 가을이나 초겨울에 중산리∼법계사∼천왕봉 코스를 따라 오르다 보면 가끔씩 개천문을 기점으로해 정상쪽에는 눈이 내리는데 비해 아래로는 비가 내리는 진풍경을 볼 수도 있으며 간혹 설화가 이 문을 경계로 해 활짝 핀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어 천왕봉의 관문임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도 있다. 개천문은 그러나 통천문에 비해 위엄은 부족하다. 통천문은 노고단쪽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으로 "하늘을 오르는 문"다운 위엄을 갖고 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의 풍경화 같은 비경에 흠뻑 젖어 걷다 보면 눈앞을 가로막은 문이 바로 통천문이다. 통천문은 그 자체가 천연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통천문의 위용은 시인 고은의 말에서 절정을 이룬다.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신선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할 정도이니 우리 인간들은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왕봉은 이처럼 두 관문을 두고 있을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있으나 이들 두 관문의 역할이 있기에 천왕봉은 더욱 신비함을 간직할 수 있으리라 본다. 천왕봉 주변에는 이들 관문과 더불어 성모사, 법계사, 향적사, 천불암 등은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분류:지리산 분류:천왕 분류:지리산 10경 분류: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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