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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교에 접근하고 있던 한국인 피난민 중에 조선인민군이 섞여있다고 의심하여, 피난민을 철교 위에 모아 공군기로 기총사격을 가하고, 달아나는 사람은 쫓아가서 사살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300여명의 민간인이 피살되었다. 가해자들의 은폐로 오랫동안 덮어져 있었지만, 1994년에 살아남은 주민이 저서를 출판하였고, 1999년 9월 9일 AP통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29일 주한미군이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2004년에는 사건의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이 사건은 반미감정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로,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 5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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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교에 접근하고 있던 한국인 피난민 중에 조선인민군이 섞여있다고 의심하여, 피난민을 철교 위에 모아 공군기로 기총사격을 가하고, 달아나는 사람은 쫓아가서 사살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300여명의 민간인이 피살되었다. 가해자들의 은폐로 오랫동안 덮어져 있었지만, 1994년에 살아남은 주민이 저서를 출판하였고, 1999년 9월 9일 AP통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29일 주한미군이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2004년에는 사건의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이 사건은 반미감정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로,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 5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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