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계루부 (桂婁部)는 고구려 행정구역으로 고구려 초기 5부의 하나였다. 초기 고구려는 5개의 부(部)가 연맹하여 성립되었는데, 처음에는 소노부(消奴部)가 연맹장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주몽은 예씨와 혼인하고 북부여 단군자리에 취임했으나 결국 북부여의 토착세력에게 쫓겨서 남쪽지역으로 남하하여 계루부와 소서노세력의 도움으로 졸본천가의 한 곳인 계루부의 변방 과루부에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떨치게 되었다. 주몽이 정착한 졸본은 광개토왕의 비문에 나타난 홀본과 같은 곳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고구려 5부족 중 왕비족인 계루부 (소서노)가 위치한 곳이다.기원전 18년 비류가 이끄는 계루부 세력은 남쪽으로 향했고 온조는 국호는 십제라고 하였다. 또한 그들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한산이였다. 그 후, 2대 유리왕은 왕 22년(서기 3년)에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겼다. 계루부 집단이 다른 세력들을 나부로 편제하고 이들을 통제하면서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그뒤 계루부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왕실을 구성하였다. 제2대 유리왕의 왕자 재사(再思)의 아들인 6대 태조왕(太祖王) 때부터 계루부의 고씨(高氏)가 왕위를 차지하였다. 계루부의 초대왕인 그에게 건국의 시조에 해당하는 ‘태조’라는 왕호와 ‘국조(國祖)’라는 별호를 주었다. 전왕족(前王族)인 소노부, 왕족인 계루부, 절노부의 대가(大加)에게는 고추가(古雛加)라는 특별 칭호를 주었다. 고구려의 5부족은 부여의 경우와 같이 고구려 형성에 주축이 된 씨족집단이었다. 5부족의 명칭은 소노부(消奴部), 계루부(桂婁部), 절노부(絶奴部), 관노부(灌奴部), 순노부(順奴部)이다. 이들 5부족은 노(奴)는 나(那)로도 표현되는 부족 단위의 정치적 사회, 즉 부족 국가를 의미한다. 계루는 고구려에서 성(城)을 뜻하는 말인 구루(溝婁)와 음이 통한다. 당나라에 패배한 것은 '계루부'의 중앙 정권이었고 다른 4부와 거기에 속한 다수의 성들은 당나라에 패한 적도 없고 고구려의 멸망은 '계루부'의 멸망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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