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왕 (陽原王, ?~ 559년, 재위 : 545년 ~ 559년)은 고구려 의 제24대 군주 이다. 안원왕 의 맏아들이고, 휘 는 평성(平成)이다. 양강상호왕(陽崗上好王)·양강왕(陽崗王)이라고도 한다. 안원왕의 맏아들이다.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총명하였다. 장성해서는 남달리 호방하였다. 이름은 양성(陽成) 또는 탕(湯). 일명 평강상호왕(平岡上好王)· 평강왕(平岡王)· 평국왕(平國王)이라고도 한다. 양원왕의 장자로 태어나 557년(양원왕 13) 태자가 되고, 559년 왕위를 계승하였다. 동위·북제 등에 조공하여 친선을 도모하였다. 547년 백암성·신성 등을 중수함 . 551년 돌궐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고구려 양원왕(陽原王)7년에 거칠부가 장군이 되어 죽령(竹嶺)이외 고현(高峴)이내의 10국을 점령할 때 혜량이 고구려를 탈출하여 내려온다. 양원왕(陽原王) 8년에는 장안성(長安城)을 쌓았다. 백성을 위로하고 농상(農桑)을 장려하며, 552년부터 짓기 시작한 장안성(長安城)의 축성을 일시 중단하는 등 양원왕의 즉위 이래 계속된 내분과 민심의 수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양원왕 (陽原王, ?~ 559년, 재위 : 545년 ~ 559년)은 고구려 의 제24대 군주 이다. 안원왕 의 맏아들이고, 휘 는 평성(平成)이다. 양강상호왕(陽崗上好王)·양강왕(陽崗王)이라고도 한다. 안원왕의 맏아들이다.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총명하였다. 장성해서는 남달리 호방하였다. 이름은 양성(陽成) 또는 탕(湯). 일명 평강상호왕(平岡上好王)· 평강왕(平岡王)· 평국왕(平國王)이라고도 한다. 양원왕의 장자로 태어나 557년(양원왕 13) 태자가 되고, 559년 왕위를 계승하였다. 동위·북제 등에 조공하여 친선을 도모하였다. 547년 백암성·신성 등을 중수함 . 551년 돌궐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고구려 양원왕(陽原王)7년에 거칠부가 장군이 되어 죽령(竹嶺)이외 고현(高峴)이내의 10국을 점령할 때 혜량이 고구려를 탈출하여 내려온다. 양원왕(陽原王) 8년에는 장안성(長安城)을 쌓았다. 백성을 위로하고 농상(農桑)을 장려하며, 552년부터 짓기 시작한 장안성(長安城)의 축성을 일시 중단하는 등 양원왕의 즉위 이래 계속된 내분과 민심의 수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표면적으로 순탄한 관계를 가진듯 하지만 양원왕 이래 북조와의 관계는 평탄하지 않았다. 북주의 무제(武帝)가 요동을 공격하여 왔을 때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拜山)에서 싸웠다. 고려로 흘러 들어간 백성들의 송환을 요구하도록 하였는데 고려에서 이에 응하지 않자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며 양원왕을 주먹으로 쳐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고려 신하들은 겁을 먹고 감히 나서지 못했으며 5천호의 유민을 돌려보냈다. 동북아의 맹주국 고구려는 드넓은 영토를 많이 잃고 말았다.결국 양원왕에 이르러서는 한반도 쪽 영토가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함경북도 지역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양원왕 때의 상황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몽고 고원의 주인공이 유연족에서, 돌궐족으로 바뀌고 이 돌궐족은 징키스칸이 몽고고원을 통일하기 전에는 제일 큰 부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