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투아라 2세(재위: 기원전1280~1270)는 아시리아의 샬만에세르 1세 (1270s-1240s)시절에 미탄니의 왕이며 전임자 와사샤타의 아들 또는 조카로 기원전 1250년경 히타이트와 유목민 알라무의 도움으로 아시리아의 멍에 대해 반란하였다. 그의 군대는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은 산악의 통로와 우물을 점령하고 아시리아 군대는 진군중에 목마름으로 고통받았다. 그럼에도 샬만에세르는 부시는 승리를 얻었다. 그는 14,400명을 처형하였다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소경으로 만들어져 이송되었다. 그의 비문은 9개의 요새 사원의 정복을 언급한다. 180 후르족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샬만에세르는 히타이트, 알라무와 그들의 동맹군을 양처럼 도살하였다. 타이두에서 이리두까지의 도시는 물론 카시아르 산에서 엘루하트와 수두와의 요새들 그리고 하라누에서 카르케미시까지 가 점령되었다. 다른 비물은 카하트에 아다드의 사원의 건설을 언급한다. 그곳은 미탄니의 도시로 역시 점령되었다.
샤투아라 2세(재위: 기원전1280~1270)는 아시리아의 샬만에세르 1세 (1270s-1240s)시절에 미탄니의 왕이며 전임자 와사샤타의 아들 또는 조카로 기원전 1250년경 히타이트와 유목민 알라무의 도움으로 아시리아의 멍에 대해 반란하였다. 그의 군대는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은 산악의 통로와 우물을 점령하고 아시리아 군대는 진군중에 목마름으로 고통받았다. 그럼에도 샬만에세르는 부시는 승리를 얻었다. 그는 14,400명을 처형하였다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소경으로 만들어져 이송되었다. 그의 비문은 9개의 요새 사원의 정복을 언급한다. 180 후르족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샬만에세르는 히타이트, 알라무와 그들의 동맹군을 양처럼 도살하였다. 타이두에서 이리두까지의 도시는 물론 카시아르 산에서 엘루하트와 수두와의 요새들 그리고 하라누에서 카르케미시까지 가 점령되었다. 다른 비물은 카하트에 아다드의 사원의 건설을 언급한다. 그곳은 미탄니의 도시로 역시 점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