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왕조 (Fatimid dynasty)는 북아프리카에 세워진 정교일치제의 왕조(909~1171)였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에 도전해 이슬람 세계의 맹주가 되려 했으나 실패했다. 왕조의 통치자들은 선지자 마호메트의 딸인 파티마의 후손이였다. 파티마 왕조지만, 왕조의 창건자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냥 지들이 상관이 있고 싶어할 뿐이다. 953년에서 975년까지북아프리카를 통치했던알 무이즈는 파티마 왕조의 제4대 칼리프였다. 군사적, 종교적 힘을 얻게 되자 종교적 불화와 정치적 쇠퇴로 인해 이스마일파 파티마 왕조의 명분은 약화되었다. 파티마 왕조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쳐나가면서도 아바스 왕조의 세력 중심지인 동쪽으로 팽창하겠다는 궁극적 목표를 잃지 않고 있었다. 1094년 파티마 왕조 칼리프 알 무스탄시르가 죽자, 이스마일파는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집트는 8세기 이후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로 중세 세계사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10세기에 들어 등장한 파티마 왕조, 아이윱 왕조, 마믈룩 왕조 시대를 거치며 이슬람의 확고한 지존으로 자리 잡았다. 분류:사라센
파티마 왕조 (Fatimid dynasty)는 북아프리카에 세워진 정교일치제의 왕조(909~1171)였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에 도전해 이슬람 세계의 맹주가 되려 했으나 실패했다. 왕조의 통치자들은 선지자 마호메트의 딸인 파티마의 후손이였다. 파티마 왕조지만, 왕조의 창건자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냥 지들이 상관이 있고 싶어할 뿐이다. 953년에서 975년까지북아프리카를 통치했던알 무이즈는 파티마 왕조의 제4대 칼리프였다. 군사적, 종교적 힘을 얻게 되자 종교적 불화와 정치적 쇠퇴로 인해 이스마일파 파티마 왕조의 명분은 약화되었다. 파티마 왕조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쳐나가면서도 아바스 왕조의 세력 중심지인 동쪽으로 팽창하겠다는 궁극적 목표를 잃지 않고 있었다. 1094년 파티마 왕조 칼리프 알 무스탄시르가 죽자, 이스마일파는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교리를 배운 살라흐 앗딘은 그의 삼촌인 시르쿠에게서 기초 군사 교육을 마쳤으며, 1160년대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분파와의 전투끝에 승리하여 1169년 삼촌 시르쿠가 장관으로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시작하였다. 유럽의 십자군 원정대인 프랑크족을 몰아낸다. 그 공적으로 이집트 시아파 파티마왕조의 대재상에 올랐고, 이후 그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집트의 통치자가 된다. 살라딘[살라흐 앗딘] 아이유브는 쿠르드족 출신으로 처음에는 누레딘 왕조를 섬겼고, 1169년경 파티마 왕조의 재상에 임명되었다. 1171년 파티마 왕조를 넘어뜨린 뒤 시리아 정복에 나선다. 약해진 이집트를 공격하는데 참여해서 이집트가 매우 약해진 것을 알고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 이집트의 파티마왕조를 물리치고 자신이 아이윱왕조를 세우고 시리아도 접수한다. 앗딘은 바이트 알 아존의 성을 함락시켰을때 700 명의 포로들을 처형한 전례가 있다. 영토를 확장하고 파티마 왕조 지지세력을 소탕하였으며 홍해를 건너 예멘까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였다. 이집트는 8세기 이후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로 중세 세계사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10세기에 들어 등장한 파티마 왕조, 아이윱 왕조, 마믈룩 왕조 시대를 거치며 이슬람의 확고한 지존으로 자리 잡았다. 분류:사라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