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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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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솔성(豆率城)은 청양의 산성이다. 법왕은 짧은 재위기간에도 불구하고 금강 이북을 중시한 듯하다. 특히 나제의 위협이 점증하던 시기에 사비 도성의 비상 대안성으로 금강 이북의 칠갑산을 중시했던 것 같다. 비록 법왕은 단명한 비운의 인물이지만, 후일 남부여 부흥군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음을 감안한다면 혜안이 있었던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왕흥사 창건과 칠악사에서 기우제를 지낸 것만으로 법왕이 칠갑산에 사비의 비상시 산성을 축조한 것으로 곧바로 연결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후 정황은 칠갑산에 두솔성이라는 산성을 쌓은 것만은 추정된다. 현 서쪽 15리 각산에 두솔성이 있다. 자비성이라고도 한다. <대동여지지> 지금의 청양군 정산면은 남부여 열이현으로 두릉윤성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15리 각산에 두솔성 내지 자비성이 있다고 <대동여지지>는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산은 어디인가? 바로 지금의 칠갑산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백제본기" 무왕="무왕" 조="조"> 기사에는 각산성 축조 사실이 나온다. 무왕 6년(605) 봄 2월에 각산성(角山城)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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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솔성(豆率城)은 청양의 산성이다. 법왕은 짧은 재위기간에도 불구하고 금강 이북을 중시한 듯하다. 특히 나제의 위협이 점증하던 시기에 사비 도성의 비상 대안성으로 금강 이북의 칠갑산을 중시했던 것 같다. 비록 법왕은 단명한 비운의 인물이지만, 후일 남부여 부흥군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음을 감안한다면 혜안이 있었던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왕흥사 창건과 칠악사에서 기우제를 지낸 것만으로 법왕이 칠갑산에 사비의 비상시 산성을 축조한 것으로 곧바로 연결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후 정황은 칠갑산에 두솔성이라는 산성을 쌓은 것만은 추정된다. 현 서쪽 15리 각산에 두솔성이 있다. 자비성이라고도 한다. <대동여지지> 지금의 청양군 정산면은 남부여 열이현으로 두릉윤성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15리 각산에 두솔성 내지 자비성이 있다고 <대동여지지>는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산은 어디인가? 바로 지금의 칠갑산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백제본기="백제본기" 무왕="무왕" 조="조"> 기사에는 각산성 축조 사실이 나온다. 무왕 6년(605) 봄 2월에 각산성(角山城)을 쌓았다. 일반적으로 무왕 6년(605)에 축조한 각산성은 임실군 관촌면 오원천 양편 기슭에 뿔처럼 솟아 있는 삼각 지점의 산성 즉 대리 산성·배뫼 산성·방현리 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무왕은 사비 남쪽 즉 금강 남안을 중시하여 익산 미륵산 아래 왕궁리 일대로 천도를 꿈꾼 인물이다. 그 결과 반도 남부 지방의 서부 전선을 중시하여 신라를 공격하였다. 이로 유추컨대 각산성은 임실군 관촌면 일대에 구축한 남부여의 2차 방어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칠갑산을 각산으로 기록한 <대동여지지>의 힌트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남부여 상황을 고려하면 <대동여지지>에 나오는 각산의 두솔성이 <삼국사기>의 각산성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 칠갑산은 현 서쪽 16리에 있으며, 옛성의 터가 있는데 자비성이라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충청도" 정산현="정산현" 산천="산천" 조="조"> 고성(古城)이 칠갑산에 있는데, 본래는 도솔성·자비성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충청도" 정산현="정산현" 성지="성지" 조="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두솔성은 도솔성이 와전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솔은 ‘도솔천’에서 나온 말로 도솔천은 불교의 이상 세계를 말한다. 도림사는 칠갑산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충청도" 정산현="정산현" 불우="불우" 조="조"> 칠갑산에는 도림사가 있다. 도림사는 폐사되었다. 73년 지표조사에서 ‘도림’이란 명문 와당을 수습하여 이곳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도림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도림이란 이름은 ‘도리천’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즉 ‘도리천’은 ‘도솔천’의 다른 말이다. 이 도림사가 바로 법왕이 기우제를 지낸 칠악사로 추정된다. ‘칠악산=칠갑산=각산’과 ‘두솔=도솔=도리=도림’은 당시 남부여가 지금의 칠갑산을 중심으로 불국토를 완성하려는 의도가 녹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무왕을 비롯한 일단의 세력은 사비의 남주작에 해당하는 미륵산을 중심으로 만경강과 동진강 일대의 평원을 중시하였다. 각산성 축조는 법왕의 계획을 최대한 축소한 형태로 마무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왕흥사와 각산성은 법왕이 동시에 시작한 역사로 그 임무를 무왕에게 일임하였다. 길이가 4.5km에 이르고 상단의 넓이가 5~10m인 두솔성이 주류성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웅진성이나 사비도성의 둘레가 2km 남짓한데 두솔성의 규모는 그 배에 가깝다. 이는 두솔성이 보통의 산성이 아니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렇게 공들여 쌓은 산성은 남부여 입장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두솔성과 매우 가까운 부여군 은산면 별신당에는 도침과 복신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별신제 유래에는 복신이 등장한다. 이는 두솔성이 복신의 근거지였던 주류성임을 짐작케하는 일화이다. 그리고 두솔성이 도솔성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실제 음운 변화는 그 역일 가능성도 있다. 즉 주류성→두류성→두루성→두솔성→도솔성의 변화 과정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 두솔성의 솔(率)자는 발음이 ‘율’ 내지 ‘루’로도 읽힌다는 사실이다. 즉 최초 두솔성은 두루성으로 표기한 것인데, 이 한자 발음을 솔로 읽어 두솔성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솔성의 어감이 도솔과 가까워 조선조에 들어와 도솔성으로 표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많은 정황들이 칠갑산 두솔성을 주류성으로 가리키고 있다. 분류:두타 분류:도솔 분류:청양의 산성 분류:두산성 분류:솔산성 분류:오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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