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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양로沈陽路)는 심양에 설치된 원나라의 행정 구역이였다. [[심양]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도로 이미 전한 시대에 초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 원대의 원정2년에 (심양로)라 불리게 되었고, 沈陽(심양)이라는 도시명칭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랴오닝 의 선양 시 지역은 한나라 이전부터 북방 민족들의 지역이었으며, 개모성이 있던 고구려 (高句麗)의 영토였다가 신라의 나당연합 통일 전쟁이후 당(唐)의 영향아래에 들어갔다. “심양로”에는 태종 6년 고려인 홍복원 등이 서경도호 “구주” 등 40여성을 들어서 원나라에 항복한 기록이 있다. 쿠빌라이가 즉위한 이후 안무고려군민총관부(按撫高麗軍民總管俯)를 설치했다. 쿠빌라이는 또 고려, 여진 , 한군(寒軍), 만호부(萬戶俯)를 증설했다. 이 두 기구는 모두 요양과 심양 일대에 두었다. 주로 고려인의 이민 사무를 관장했다. 1296년 상기의 두 기구를 하병하여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부로 개편했다. 이 기구를 간칭 하여 심양로(瀋陽路)라 했다. 요양 옛 성에 소재지를 두고 총관 5, 천호 24, 백호 25를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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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심양로沈陽路)는 심양에 설치된 원나라의 행정 구역이였다. [[심양]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도로 이미 전한 시대에 초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 원대의 원정2년에 (심양로)라 불리게 되었고, 沈陽(심양)이라는 도시명칭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랴오닝 의 선양 시 지역은 한나라 이전부터 북방 민족들의 지역이었으며, 개모성이 있던 고구려 (高句麗)의 영토였다가 신라의 나당연합 통일 전쟁이후 당(唐)의 영향아래에 들어갔다. “심양로”에는 태종 6년 고려인 홍복원 등이 서경도호 “구주” 등 40여성을 들어서 원나라에 항복한 기록이 있다. 쿠빌라이가 즉위한 이후 안무고려군민총관부(按撫高麗軍民總管俯)를 설치했다. 쿠빌라이는 또 고려, 여진 , 한군(寒軍), 만호부(萬戶俯)를 증설했다. 이 두 기구는 모두 요양과 심양 일대에 두었다. 주로 고려인의 이민 사무를 관장했다. 1296년 상기의 두 기구를 하병하여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부로 개편했다. 이 기구를 간칭 하여 심양로(瀋陽路)라 했다. 요양 옛 성에 소재지를 두고 총관 5, 천호 24, 백호 25를 관할했다. 심양로는 행정구역상 요양 행성에 속했는데, 요양과 심양 일대의 고려 군민을 관할하기 위해 설립한 전문기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 행성을 설립할 때 심양로를 정동행성에 귀속시켰던 것이다. 원조 중,후기 심양로는 원에 상주하고 있는 고려 왕실의 성원 심왕의 통치를 받았다. 이런 시점에서 볼 때 심양로는 원 경내의 특수한 행정기구였다고 할 수 있다. 심양은 심수(沈水)의 양(陽)으로 풍수사상에 의하면 물의 북쪽을 양(陽),남쪽을 음(陰)이라 칭한다. 심수에 위치한다고 하여 심양로(沈陽路)라 불리기 시작하였고 1625년 청태조가 도성을 요양(遼陽)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분류:원나라의 행정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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