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석호(玄錫虎, 1907년 5월 23일 경북 예천 ~ 1988년 12월 2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경찰로 이력을 시작했고, 경부 직위에 오른 뒤 전남 화순군수가 되어 이후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했다. 광복 후 기업인으로 활동하다가 제3,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당 신파의 핵심 인물로서 제2공화국 내각에 입각했다.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하던 중 5·16 군사정변을 맞아 수감되었고, 풀려난 뒤에는 가톨릭 교리를 연구하며 여생을 보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분야에 선정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현석호는 충남 광업부장으로 재임 중에 일제가 패망하고 1945년 9월 중순 충남지사로 미군정 육군 대령이 부임하자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지사에게 "나는 일제에 협력한, 고급관리로서 일한 친일파이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답하고 이 내용을 회고록에 실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다.
현석호(玄錫虎, 1907년 5월 23일 경북 예천 ~ 1988년 12월 2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경찰로 이력을 시작했고, 경부 직위에 오른 뒤 전남 화순군수가 되어 이후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했다. 광복 후 기업인으로 활동하다가 제3,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당 신파의 핵심 인물로서 제2공화국 내각에 입각했다.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하던 중 5·16 군사정변을 맞아 수감되었고, 풀려난 뒤에는 가톨릭 교리를 연구하며 여생을 보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분야에 선정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현석호는 충남 광업부장으로 재임 중에 일제가 패망하고 1945년 9월 중순 충남지사로 미군정 육군 대령이 부임하자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지사에게 "나는 일제에 협력한, 고급관리로서 일한 친일파이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답하고 이 내용을 회고록에 실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