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파달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케 하여 빈(邠) 기(岐)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주민과 단결하여 나라를 세웠다. 이 때 이 려국 건국의 일등 공신은 람국(藍國)이였다. 을묘년(乙卯年)은 두홀(豆忽) 임금의 원년이다. 남후(藍侯)가 도읍을 남쪽으로 옮겨 엄독홀(奄瀆忽)에 거처하였다. 기원전 1266년 남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여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한다. 이에 색불루 단군, 태왕은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기(지금의 섬서성)에 웅거토록 하였다. 신지 여파달(黎巴達)이 서쪽의 빈, 기의 땅 가까운 곳에 만든 나라 이름이 여(黎)이며, 빈, 기의 땅은 주나라의 근거지이기도하다.
여파달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케 하여 빈(邠) 기(岐)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주민과 단결하여 나라를 세웠다. 이 때 이 려국 건국의 일등 공신은 람국(藍國)이였다. 을묘년(乙卯年)은 두홀(豆忽) 임금의 원년이다. 남후(藍侯)가 도읍을 남쪽으로 옮겨 엄독홀(奄瀆忽)에 거처하였다. 기원전 1266년 남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여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한다. 이에 색불루 단군, 태왕은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기(지금의 섬서성)에 웅거토록 하였다. 신지 여파달(黎巴達)이 서쪽의 빈, 기의 땅 가까운 곳에 만든 나라 이름이 여(黎)이며, 빈, 기의 땅은 주나라의 근거지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