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페리히 2세(Chilperic II, 672~721)는 프랑크 왕국의 군주로 힐데리히 2세의 아들이었다. 힐페리히 2세(Chilperich II,재위:719-720)는 네우스트리아의 왕. 한때 프랑크 왕국의 전역을 지배했다. 힐데리히 2세의 아들인 듯한 힐페리히는 원래 수도원에서 살며 다니엘이란 종교적 이름으로 불렸으나 이후 715년 네우스트리아의 왕이 되었다. 힐페리히를 좌지우지하던 네우스트리아의 궁재 라겐프리트는 아우스트라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다. 힐페리히는 아르덴 지방의 앙블레브(716)와 캉브레 남쪽의 비네(717)에서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카를 마르텔에게 패배한 뒤인 719년 아키텐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719년 아우스트라시아의 실권 없던 왕 클로타르 4세가 죽자 카를 마르텔은 자신의 권력을 법적으로 정당화시켜줄 메로빙거 왕조 출신 사람을 찾아 힐페리히를 복위시켰다. 이로써 힐페리히는 프랑크 전체의 왕이 되었다.
힐페리히 2세(Chilperic II, 672~721)는 프랑크 왕국의 군주로 힐데리히 2세의 아들이었다. 힐페리히 2세(Chilperich II,재위:719-720)는 네우스트리아의 왕. 한때 프랑크 왕국의 전역을 지배했다. 힐데리히 2세의 아들인 듯한 힐페리히는 원래 수도원에서 살며 다니엘이란 종교적 이름으로 불렸으나 이후 715년 네우스트리아의 왕이 되었다. 힐페리히를 좌지우지하던 네우스트리아의 궁재 라겐프리트는 아우스트라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다. 힐페리히는 아르덴 지방의 앙블레브(716)와 캉브레 남쪽의 비네(717)에서 아우스트라시아의 궁재 카를 마르텔에게 패배한 뒤인 719년 아키텐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719년 아우스트라시아의 실권 없던 왕 클로타르 4세가 죽자 카를 마르텔은 자신의 권력을 법적으로 정당화시켜줄 메로빙거 왕조 출신 사람을 찾아 힐페리히를 복위시켰다. 이로써 힐페리히는 프랑크 전체의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