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타발(延陀勃) 연타취발 또는 우태(優台)는 소서노의 첫 남편이였다. 또는 연타발은 백제 시조인 온조왕의 외할아버지이다. 고추모의 고구려 개국을 도운 연타발은 졸본 사람이다. 졸본 땅은 계루부, 연노부 등 5개의 부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연타발이 속한 계루부는 언제나 연노부에 밀려 졸본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남하하기 전 연타발은 홀본 지역에 웅거하고 있었다. 연타발은 홀본 부여왕 아니면 계루부 대가 또는 비류국에 소속된 일개 홀본지역에 거주하면서 상단을 이끌었던 호족이였다. 그는 남북의 갈사를 오가면서 재물을 모아 부를 이루어 거만금에 이르렀다. 은밀하게 주몽을 도와서 창업입도의 공을 세웠다. 뒤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로 옮겨갔다. 당시 북부여 단군 고무서 또는 졸본태수(卒本太守) 연타발(延陀勃)에게는 소서노(召西奴)라 불리는 딸(女)이 있었는데 대단히 아름다웠다. 우태가 그 소리를 듣고 졸본으로 간다. 고구려는 당대 최고의 대상인 연타발이 딸 소서노를 주몽에게 시집보내 건국을 도왔다. 또 소서노의 아들 온조가 세운 백제는 명실공히 선진 국제무역국이었다.
연타발(延陀勃) 연타취발 또는 우태(優台)는 소서노의 첫 남편이였다. 또는 연타발은 백제 시조인 온조왕의 외할아버지이다. 고추모의 고구려 개국을 도운 연타발은 졸본 사람이다. 졸본 땅은 계루부, 연노부 등 5개의 부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연타발이 속한 계루부는 언제나 연노부에 밀려 졸본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남하하기 전 연타발은 홀본 지역에 웅거하고 있었다. 연타발은 홀본 부여왕 아니면 계루부 대가 또는 비류국에 소속된 일개 홀본지역에 거주하면서 상단을 이끌었던 호족이였다. 그는 남북의 갈사를 오가면서 재물을 모아 부를 이루어 거만금에 이르렀다. 은밀하게 주몽을 도와서 창업입도의 공을 세웠다. 뒤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로 옮겨갔다. 당시 북부여 단군 고무서 또는 졸본태수(卒本太守) 연타발(延陀勃)에게는 소서노(召西奴)라 불리는 딸(女)이 있었는데 대단히 아름다웠다. 우태가 그 소리를 듣고 졸본으로 간다. 고구려는 당대 최고의 대상인 연타발이 딸 소서노를 주몽에게 시집보내 건국을 도왔다. 또 소서노의 아들 온조가 세운 백제는 명실공히 선진 국제무역국이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 의하면 백제 건국시조를 비류왕(沸流王)으로 설정하는 새로운 설이 추가되어 있다.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문구에 의하면 비류의 외조부 연타발은 남북 갈사를 오가며 많은 재물을 모았다. 비류 중심으로된 건국설화는 비류와 온조가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와 졸본부여 연타발의 딸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다. 소서노는 우태에게 시집가서 비류와 온조를 낳고 우태가 죽은 뒤 과부로, 주몽이 졸본으로 망명해오자 그와 재혼하였다. 소서노는 아들을 가진 8세 연상의 과부였다. 몇몇 학자들은 주몽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데는 소서노의 아버지 연타발의 경제력이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 추측한다. 분류:고구려 분류:백제 분류:졸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