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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나벌(徐那伐)은 신라의 옛 이름이였다. 조선 유민들이 산골짜기에 나누어 살며 육촌을 이루고 있었다.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자산진지촌, 무산대수촌 등이였다. 갑자(기원전 57년) 4월 병진일(일설은 정월 15일)날 박혁거세는 왕위에 오르자 그때 나이 13 세였으며, 호를 거서간(居西干) 또는 거슬한(居瑟邯)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유사에는 서라벌로 기록되어 있음)이라 하고, 서울을 금성이라 하여 그 곳에 궁궐을 지었다 한다. 기원전 53년 1월 용(龍)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나 계집아이를 낳았는데, 우물 이름을 따라서 알영이라 하였다. 또는 기원전 53년에 왕비를 맞아들였다. 신라라는 국호는 역사서에 따라 사로(斯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나벌(徐那伐)·서야(徐耶)·서야벌(徐耶伐)·서라(徐羅)·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 뜻은 동방의 나라, 새로운 나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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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서나벌(徐那伐)은 신라의 옛 이름이였다. 조선 유민들이 산골짜기에 나누어 살며 육촌을 이루고 있었다.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자산진지촌, 무산대수촌 등이였다. 갑자(기원전 57년) 4월 병진일(일설은 정월 15일)날 박혁거세는 왕위에 오르자 그때 나이 13 세였으며, 호를 거서간(居西干) 또는 거슬한(居瑟邯)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유사에는 서라벌로 기록되어 있음)이라 하고, 서울을 금성이라 하여 그 곳에 궁궐을 지었다 한다. 기원전 53년 1월 용(龍)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나 계집아이를 낳았는데, 우물 이름을 따라서 알영이라 하였다. 또는 기원전 53년에 왕비를 맞아들였다. 신라라는 국호는 역사서에 따라 사로(斯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나벌(徐那伐)·서야(徐耶)·서야벌(徐耶伐)·서라(徐羅)·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 뜻은 동방의 나라, 새로운 나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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