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왕(古爾王, ? ~286년, 재위 : 234년~286년)은 백제의 제8대 왕이다. 《신찬성씨록》에는 구이(久爾) 또는 고모(古慕)로 표기되어 있다. 고이가 왕이 되기 전 구수왕 때의 일이다. 당시 백제 조정은 고구려에서 내려온 해씨(解氏)와 토착세력인 진씨로 가득찼다. 고이왕이 등장하면서 한강 유역을 통합하고 율령을 반포하는 등 실질적인 시조로 등장했다. 사반왕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어려서 정사를 감당하지 못하자 사반왕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니 곧 고이왕이다. 고이왕은 즉위 후 국가체제의 정비와 왕권 강화에 율령을 확립하고 관제를 제정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볼 때, 고이왕이 즉위한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온조왕 이후 즉위한 왕들은 전부 선왕의 맏아들이었다. 246년 고이왕 13년, 황해(발해만)를 건너 지나대륙의 남부 및 요서지방으로 진출한다. 후한의 낙랑(당시 낙랑군은 북경 부근의 후한의 낙랑, 평양의 최리의 낙랑국이 있었다.)을 공격하였다. 분류:백제의 왕
고이왕(古爾王, ? ~286년, 재위 : 234년~286년)은 백제의 제8대 왕이다. 《신찬성씨록》에는 구이(久爾) 또는 고모(古慕)로 표기되어 있다. 고이가 왕이 되기 전 구수왕 때의 일이다. 당시 백제 조정은 고구려에서 내려온 해씨(解氏)와 토착세력인 진씨로 가득찼다. 고이왕이 등장하면서 한강 유역을 통합하고 율령을 반포하는 등 실질적인 시조로 등장했다. 사반왕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어려서 정사를 감당하지 못하자 사반왕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니 곧 고이왕이다. 고이왕은 즉위 후 국가체제의 정비와 왕권 강화에 율령을 확립하고 관제를 제정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볼 때, 고이왕이 즉위한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온조왕 이후 즉위한 왕들은 전부 선왕의 맏아들이었다. 246년 고이왕 13년, 황해(발해만)를 건너 지나대륙의 남부 및 요서지방으로 진출한다. 후한의 낙랑(당시 낙랑군은 북경 부근의 후한의 낙랑, 평양의 최리의 낙랑국이 있었다.)을 공격하였다. 고이왕 27년 정월에 내신좌평을 두어 왕명출납에 관한 일을 맡게 하고 내두 좌평은 재정에 관한 일을 맡고 병관좌평은 외방의 병마에 관한 일을 맞게 했다. 또한 6좌평은 모두 1품이요, 달솔은 2품, 은속은 3품, 덕솔을 4품이다. 백제의 역사는 고이왕이 전부다 할 정도로 그는 백제 웅비의 기틀을 다진 훌륭한 왕이다. 분류:백제의 왕